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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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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애가 1:12-17

숨겨진 부끄러움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2019. 8. 20.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1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애가 1:12-17예루살렘은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부끄러움을 당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외치지만 모두가 인상을 찌뿌리며 지나갈 뿐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멸망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하면서 여호와께 외치는 내용이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달라고 외친다.

여호와를 부르며 부르짖던 예루살렘은 이제 12절에서 지나가는 모든 나그네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보고 공감해 달라고 외친다. 그 내용은 주님께서 분노하신 날에 내리신 자신에게 내리신 이런 슬픔을 보라는 것이다. 이런 슬픔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죽고 완전히 불타고 다 약탈당하고 지도자들은 모두 잡혀가는 이러한 슬픔을 세상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은 하나님의 책임은 절대 아니다. 너무나 슬프고 답답한 나머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13절은 "주님께서 저 높은 곳으로부터 불을 보내셔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재앙은 바빌로니아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저 높은 곳, 즉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어디로 오는가 하면 내 뼈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가장 깊은 속까지 불이 들어와서 자신을 완전히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뼈 속으로부터 불로 타 들어가던 예루살렘에서 탈출하여 도망하던 자들을 잡으시려고 하나님은 덫까지 놓으셨다는 것이다. 도망하던 자들은 덫에 걸려 넘어지게 하시고 완전히 폐인이 되게 하셔서 힘이 하나도 없게 하셔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로 태우시고 덫으로 잡으셔서 넘어지게 하신 하나님은 14절에서 이제 꼼짝 못하게 하시려고 멍에를 만들어 씌우셨다. 그런데 그 멍에는 예루살렘의 죄를 얽어서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그 죄는 정말 무겁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그 무게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발에는 그물이 걸려있고 목에는 무거운 죄의 멍에가 씌워져 있다. 이제 예루살렘에게 매여진 고삐는 예루살렘이 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넘겨진다.

15절은 주께서 예루살렘 품 안에 있는 용사들을 모두 무찌르시려고 성회를 소집하셨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군대를 일으키셨다" 라고 그 의미를 살려 번역했지만 원어는 명절에 예루살렘 가득히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을 모이게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소집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용사들을 모두 몰아내시려고 소집한 것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제사를 드리며 기뻐했지만 이번에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용사들을 죽이는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처녀 유다를 술 틀에 넣고 밟으셨다는 것이다. 이는 포도를 술 틀에 넣고 밟으면 붉은 포도즙이 나오듯 처녀 유다는 짓밟혀 피가 포도즙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16절은 이제 예루살렘이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우는 장면이다. 눈물이 흘러 넘치는 샘물처럼 그 눈에서 흘러 넘쳐 뺨을 타고 시냇물처럼 흐른다. 이렇게 울 때는 옆에서 어깨를 토닥여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내 영혼을 다시 살려줄 그런 위로자는 너무 멀리 있다. 원수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니 그 자녀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못쓰게 되어 버렸다.

17절은 시온이 손을 들어 빌었다고 했다. 이는 해산하는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높이 쳐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무엇을 잡기 위해 손을 펴고 높이 드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위로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 이웃들을 시켜서 야곱을 치게 하셨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뜻하는 말로 예루살렘과 유다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예루살렘을 칭송하고 존경하는 이웃들이 이제는 예루살렘을 치는 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더러운 성으로 여긴다고 했다. 이는 8절에서 벌거벗겨진 여인이 수치를 당하고 있는데 생리혈까지 터져서 흘러 내리는 모습을 요약해서 말한 것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벌거벗은 수치를 보고 사람들은 모두 더럽다고 얼굴을 찌푸린다는 뜻이다. 더럽다는 말은 위생적으로 불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거룩의 반대이다. 부정해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상태이다.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도 가까이 하면 안되는 상태이다. 접촉하는 자들도 모두 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한 예루살렘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12절에서 예루살렘이 불러서 하소연을 한 "길가는 모든 나그네들" 이다. 그러나 아무도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 아무도 가까이 와서 눈물 닦아 주지 않고 자기 옷을 벗어서 가려주지도 않고 등을 토닥여 주지도 않는다. 예루살렘은 단지 혼자서 울부짖으며 외칠 뿐이다.

이렇게 드러난 더러움과 9절의 치마 속의 더러움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국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치마 속의 더러움도 드러난 더러움과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만 자신의 더러움을 치마로 가리고 괜찮은 척하지만 그것은 믿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계시지도 않고 자신이 가리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은 자신의 더러움을 치마로 가리며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척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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