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1:1-11 불순종하던 예루살렘은 벌거벗겨진 채 수치를 당하며 귀한 보물까지도 약탈을 당하고 성소도 더럽혀졌다.
예레미야 애가를 시작한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왕궁과 화려한 집들이 불에 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학살을 당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일은 아마도 성전이 불에 타고 성전 기둥들이 뜯겨지고 모든 기구들도 바빌로니아로 옮겨진 것일 것이다. 또한 왕과 제사장들과 모든 지도자들이 다 포로로 잡혀간 일일 것이다. 이런 모든 끔찍한 일들이 잔혹한 침략자 바빌로니아가 한 일이 아니라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Dillard & Longman, 480).
1절은 예루살렘을 사람으로 비유하며 비참한 현재를 영광스러운 과거와 세가지로 비교하고 있다. 첫째 적막하게 앉아있다는 말은 혼자서 외롭게 앉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백성들이 그렇게도 많았던 것과 비교하고 있다. 이는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잘 키운 어머니의 그림이 그 자녀들이 모두 다 죽고 홀로 남은 그림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둘째 과부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 위대한 자였다는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았던 첫째 그림이 조금 더 강화된 모습이다. 많은 자녀들이 모두 다 유력한 자들로 성장하여 위대한 자들의 어머니로 존중 받던 모습이 이제 자녀도 없고 남편도 없이 홀로 구걸하며 떠도는 과부의 모습과 비교되는 그림이다.
셋째는 이제 종의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온 땅의 여왕이었었는데 말이다. 셋째 그림은 두번째보다 한층 더 강화된 그림이다. 과거에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 가장 높은 여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장 낮은 여자 노예의 신세가 된 것이다. 모두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은 지도자들은 모두 잡혀갔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신랑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버리고 떠나셨기 때문이다.
2절은 자녀들 다 죽고 홀로 남은 과부이자 노예가 된 예루살렘을 위로해 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예루살렘은 밤새도록 슬피 울어 댄다. 눈물이 흘러내려 계속해서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멈추지 않는다. 과거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던 연인들 가운데서 위로해줄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 한 분만 남편을 두고 살았어야 했는데 주변의 모든 나라들의 신들을 연인으로 두고 문란한 삶을 즐겼던 것이다. 그런데 빨던 꿀이 떨어지자 모두가 다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친구들 조차도 모두가 다 그녀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 모든 동맹국들이 다 배반하고 돕지 않으며 오히려 불행에 빠진 예루살렘을 노략질을 하며 즐거워하는 원수가 된 것이다.
3절은 예루살렘에 이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유다의 불행을 묘사한다. 원어는 유다가 사로잡혀 갔다는 말로 3절을 시작한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벌거벗겨진다는 뜻이다. 벌거벗겨진 채로 끌려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유다 사람들의 유배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과 많은 노역으로 시달리다가 벌거 벗겨진 채로 사슬에 매여 끌려가는 여인의 비참한 모습이다. 그렇게 끌려가서 이방 나라들에서 살게 되었는데 쉴 곳조차 찾지 못해 길거리 노숙자가 된 모습이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이 불쌍한 여인을 가만 두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이 불쌍한 여인을 뒤쫓는데 이제 좁은 곳에 이르러서 도망갈 곳도 없게 되어 잡혀버렸다.
4절은 시온으로 가는 길이 쓸쓸하거나 처량하다고 한 말의 원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 길이 운다는 뜻이다. 명절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그 길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었다.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성문들도 다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는 북적이던 성문에 아무도 없어 섬뜩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제사장들은 아무도 성전에 오지 않기에 한숨을 쉬고 있다.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다고 했는데 처녀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기쁨을 표현하던 여인들이다. 제사장들과 같이 기뻐 했었는데 이젠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시온은 이렇게 비탄에 잠겼다는 것이다.
5절은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원수들은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것이다. 이는 신명기 28:13절에서 명령을 지키면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고 한 말의 반대 상황이다. 대적들이 유다 사람들의 머리가 된 것이다. 순종하는 백성이 형통해야 하는데 대적들이 형통한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그러한 불행의 의미를 여호와께서 고통을 주셨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는 고백이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된 예루살렘과 유다의 어린 자식들이 사로잡혀 끌려가는 일이다. 그렇게도 고귀하고 화려했던 엄마가 벌거벗겨진 채 도망하다가 사로잡혀 고통을 받는데 자식들 마저 잡혀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6절은 도성 시온이 누리던 영광이 떠나갔다고 했는데 아름다운 귀금속으로 장식하여 그 고귀한 신분을 자랑했는데 그 모든 장신구들이 다 떠나갔다는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장신구들이 떠나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에서 떠났다는 것을 상징한다. 지도자들은 풀을 찾지 못한 사슴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풀도 먹지 못한 사슴이 또한 정신없이 쫓겨 도망까지 했다는 것이다.
7-9절은 예루살렘이 그렇게 된 이유를 생각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잃고 불행해진 상태에서 하는 일은 7절에 보면 지난 날의 모든 소중한 일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고통과 고난 뿐이다. 지금은 백성이 대적들에게 잡혀가도 돕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적은 이러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며 좋아하고 있다.
8절은 그렇게 된 이유가 예루살렘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번역에서 마침내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번역한 말은 벌거벗겨진 채 사로잡힌 예루살렘이라는 여인에게 생리혈이 터졌다는 뜻이다. 레위기 15:19절에 나온 것처럼 부정한 상태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예루살렘을 떠받들고 높이던 자가 이제는 생리혈이 터진 벌거벗은 여인과 같은 예루살렘을 보고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생식기의 노출 자체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인데 게다가 생리혈까지 터진 것은 수치중의 최고봉이라는 뜻이다. 이제 이 여인은 한숨을 지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고 했다.
9절은 그녀의 더러움이 그녀의 치마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치마 조차도 없지만 과거 화려했던 시절 그 치마 속에 더러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 더러움이 치마로 가려져 있었지만 이제 그 더러움은 모든 이들 앞에 공개된 것이다. 이는 과거에 음란하게 우상 숭배하며 부정한 삶을 살면서도 모두 치마로 감추고 거룩한 척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그렇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모든 더러움을 만인들 앞에 드러내게 하실 줄은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비참해졌어도 아무도 위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이 고통을 봐 달라고 부르짖는다. 대적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른다는 것이다.
10절은 대적들이 손을 뻗어 그녀의 보물들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공회란 성전 마당에 모여 있는 예배자들을 뜻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적들은 성전에 보란듯이 침입하여 성전을 더럽히고 모든 보물들을 다 빼앗아 간 것이다.
11절은 성전이 더럽혀지고 약탈을 당한 것 이외에도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목숨을 이으려고 보물들을 먹거리와 바꾼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5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햄버거 하나와 맞바꾸는 모습과도 같다.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모두 다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모습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만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 비참한 상황에 처한 백성들의 모습을 살펴봐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예레미야 애가는 시작부터 예루살렘의 멸망을 벌거벗겨진 채 불결해진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한다. 굶주림에 죽어가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예레미야가 그렇게도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는데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겸손히 낮은 자세로 섬기고 본을 가르치라고 하셨건만 믿는 자들은 세상의 영광만 바라보고 탐욕스럽게 움켜 쥐면서 자기 보다 낮은 자들을 무시하며 살아간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에 나온 여인처럼 되게 하실 것이다. 그 때가 되어 통곡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