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4:15-19하늘의 여신을 섬기던 여인들과 그 남편들은 하늘의 여신을 섬기는 일을 멈추었기에 모든 재난들이 임한 것이라며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멈추라고 하신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는다면 살아 남아서 이집트에 온 모든 유대인들까지 다 멸종 시키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이집트에 사는 유대인들 중에 아내들이 다른 신에게 제물을 드린다는 것을 아는 남편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하늘의 여신을 섬기겠다고 말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15-18절은 유대인들이 만난 재앙을 다른 관점에서 본 내용이다. 15절은 우상 숭배를 하던 여인들과 그것을 알고도 묵인하던 남편들이 모여서 예레미야에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16절은 무슨 말을 하든지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이유가 17-18절에 나온다.
17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자신들이 입으로 내뱉은 말을 그대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조상과 왕들과 고관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늘 했던 것처럼 제물을 바치고 술 제물도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는 양식도 풍족하였고 잘 살았으며 재앙을 만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은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이다. 기원전 621년 요시야가 개혁을 해서 모든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게 했다. 그런데 609년 요시야는 죽고 그 뒤 기원전 598년 바빌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망하고 여호야긴도 포로로 잡혀갔다. 587년에는 그달리야도 암살되고 모두 다 흩어졌다. 이는 유대인들이 하늘의 여신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일어난 이러한 재앙들에 비추어 보면 유대인들이 하늘의 여신을 섬기는 것을 멈추자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진 것이 맞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하며 살 때 아무 일도 없이 편안히 살았던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한결같은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으로 계속 경고할 때 듣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그대로 심판하신 것이다.
19절은 우상 숭배를 하던 여인들이 한 말이다. 여인들이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남편들 몰래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알고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 여신에게 빵을 만들어 바치고 술 제물 바칠 때 남편들도 다 알았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나무를 주워 왔을 것이다. 아버지들은 불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빵을 반죽해서 불에 구워서 여신에게 드린 것이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온 가족이 다 알고 참여했던 것이다.
하늘의 여신이란 앗시라아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던 Istar일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신을 아스다롯(Astarte)라고 불렀다. 이집트 사람들은 Anat이라고 불렀다. 이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이러한 우상을 함께 섬겼던 것이다. 남편은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여인들은 집에서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과 물질의 풍요와 자녀를 많이 낳게 해 달라고 하늘의 여신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신을 섬겼지만 남편들은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섞어서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어떤 신을 섬기든 잘 먹고 아무 일 없이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신을 섬기면 그 신의 도움으로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섬기면서도 아내들은 집에서 하늘의 여신을 섬긴 것이다. 여호와를 믿어도 잘 살게 되지 않으니 다른 신도 섬겼던 것이다. 뭐든지 잘 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태도가 없이 예배를 드렸다면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더 많이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나온 여인들은 하나님이 해 준 것이 뭐가 있냐? 하늘의 여신 섬길 때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하나님만 섬기니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게 된 것이다.
유대사람들의 어머니들도 우리 조상들의 어머니들 처럼 남편과 자녀들이 잘되고 모든 일이 형통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랬다. 우리 조상들의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빌고 떡을 해 놓고 빌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늘의 여신께 빌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고 잘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전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로 말씀을 듣고 배우며 하나님을 믿었다기 보다는 살기 힘드니까 조상신들을 섬기고 부처를 섬기고 천지신명을 섬기던 것을 멈추고 다른 서양 신을 믿어 본 것일 수 있다. 60-80년대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자녀들 잘되게 해 달라고 복을 달라고 빌었는데 모두가 잘 살게 되니 그렇게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다가 이제 하나님 안 믿어도 잘 먹고 잘 살게 되니 이제 다들 교회를 떠나는 것일 수 있다.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이나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어머니들이나 모두가 다 그 마음은 똑같다. 내 자식들 잘 되고 남편 건강해서 아무 일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한 세상 그렇게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도 복을 비는 신앙으로 변질된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나 무속신앙이나 다 똑같이 자신과 가족들의 복을 비는 것은 똑같기에 이러한 것들을 섞어서 성경과는 다른 기독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혼합된 기독교가 신학자와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번영 신학이고 성도들 입장에서는 기복신앙의 기독교인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약속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따라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 믿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이 어떤 때는 힘든 길이고 고달픈 인생 길이라고 하더라도 믿고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우리 몸을 완전히 맡기고 나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탐욕과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을 믿는 것과 뒤섞어 혼합된 기독교를 만들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