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8:18-28 자신을 하나님 보다 높이고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조롱하던 모압은 그 모든 도시들이 파괴되고 바위 틈 협곡에 불안한 둥지를 틀고 사는 비둘기처럼 살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그모스를 섬기며 자신의 강한 힘을 의지하던 모압은 포도주가 쏟아지듯 피를 흘리며 망하게 될 것이라 했다. 이제 모압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파괴되고 바위 틈에서 살게 될 것이라 말한다.
18절은 딸 디본을 영광스러운 곳에서 내려와 메마른 맨 땅에 앉으라고 한다. 디본은 오늘날 Diban이고 사해에서 동쪽으로 12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철기시대의 성벽이 발굴된 바 있고 디본이라고 새겨진 돌도 발굴되었다(Thompson, 707). 돌로 높은 성벽을 쌓고 뒤쪽은 산으로 막혀진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이다. 이러한 성이 왕좌에 앉아있는 여왕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제 메마른 맨 땅에 앉는 노예신세라는 것이다. 메마른 맨땅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목마르다는 뜻이다. 땅이 목말라서 쩍쩍 갈라지고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곳에 앉으라는 것이다. 멸망시키는 자가 올라와서 네 요새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19절은 아로엘은 디본의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암몬의 남동쪽 국경지대에 있다(Ibid., 708). 사사기 11:18-19절에 나오는 아르논 강가에 위치해 있다. 아르논 강은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Wadi)이다. 강가에 높은 성벽을 쌓은 요새이고 길가이 있는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 가에 서서 살펴 보다가 도망 쳐서 피하여 보려는 남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 보아라" 라고 한 것이다. 디본이 멸망하여 거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모압 국경에 있는 아로엘까지 왔지만 아로엘에 머물 생각은 없다. 계속 도망쳐서 사막으로 갈 것이다. 이제 곧 멸망시키는 자가 아로엘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20절은 디본에서 도망쳐 온 피난민들이 하는 말이다. 모압이 수치를 당했다고 말했다. 수치를 당했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바로 이어서 그 성벽이 무너졌다고 했다. 18절에서 디본을 딸로 비유했기에 그 딸이 수치를 당한 것이다. 그 딸은 갑옷을 입은 것과 같은 성벽으로 둘러싸였는데 이제 그 갑옷이 벗겨지고 알몸으로 적들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아르논 강가에 사는 사람들이란 아로엘의 주민에게도 알리라는 것이다. 어서 자신들과 함께 도망가자는 것이다.
21-24절은 재앙이 밀어 닥친 곳이 디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압의 고원지대와 수많은 도시들의 이름이 나온다. 벳가물은 디본에서 동쪽으로 8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Ibid., 708). 다른 도시들도 모두 디본 주변의 도시들일 것이다. 이제 국경지대에 있는 아로엘만 남고 다 무너졌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25절에서 뿔이 잘리고 모압의 팔이 부러졌다고 했다. 시편 75:11절에서도 오만한 뿔은 잘린다는 말이 나온다. 시편 10:15절에는 악인의 팔을 꺾는다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뿔과 팔은 구약에서 힘의 상징이다. 이제 모압은 다 망하고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26-27절은 술 취한 사람의 그림으로 모압을 묘사한다. 26절을 보면 모압이 마신 술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노의 잔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취하도록 마시게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대적하여 자신을 높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잔에 취해서 토하고 또 토한 것 위에 뒹굴어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제 모압은 자기가 토한 것을 침대 삼아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자고 있다.
27절은 모압이 이스라엘을 조롱거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비틀거릴 때 조롱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그렇게 머리를 흔들며 조롱했다는 것이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은 사람들에게 매를 맞는 법이다. 그렇게 매를 맞는 이스라엘을 옆에서 구경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조롱했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대적하여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징벌을 받을 때 불쌍히 여기지 않고 조롱한 것이 모압의 죄이다.
28절은 모압 백성을 부르며 성읍을 떠나서 바위 틈 속에 자리 잡고 살라고 한다. 깊은 협곡의 어귀에 불안정하게 둥지를 틀고 사는 비둘기처럼 되라고 한다. NASB는 "깊은 협곡의 어귀"를 "beyond the mouth of the chasm" 이라고 번역했다. 건천에 물이 가득 흐를 때 건천의 둑은 물이 빠지면 좁은 협곡의 꼭대기가 된다. 그곳을 입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곳에는 물이 흐르면서 물에 파인 구덩이들이 있다. 그곳에 비둘기들이 둥지를 튼다. 물이 빠졌을 때는 그곳이 좁은 협곡의 입에 해당하는 높은 곳에 있기에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둥지를 트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우기가 되어 비가 오면 비둘기는 그곳을 빠져나와 갈 곳이 없이 방황하는 것이다(Longman & Garland, 513).
그래서 새번역은 "불안정하게" 라는 말을 넣은 것이다. 바위 틈에 숨어살지만 모압의 피난민들은 둥지가 물에 잠긴 비둘기처럼 그곳 조차도 잃고 방황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죄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그렇게 되었다며 보는 데서는 책망하면서 돌아서면 흉을 보고 조롱하는 것이 죄이다.
나는 거룩하고 다른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하다고 정죄하는 것이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교만이다. 어려움 당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인 교만이다. 만약 우리도 그렇게 산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 다 잃고 피한 협곡의 둥지도 물에 잠기는 것과 같은 일을 우리가 당하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