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6:13-24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 군대가 패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빌로니아 군대가 이집트 본토에 침공하게 하셔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듯 완전히 멸하게 하신다.
이전 말씀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의지하던 이집트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완전히 패할 것이라 했다. 이제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의 용병들을 격파한 바빌로니아 왕은 이집트로 침공할 것이고 이집트의 군대나 용병들은 모두 도망갈 것이라고 말한다.
13-14절은 갈그미스에서 이집트군을 격파한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이집트 본토로 침공한다는 것을 사방에 알리라는 것이다. 14절 끝부분에 있는 "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너를 삼킬 것이다" 라는 말은 "사방에서 칼이 너를 삼킬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는 10절에서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칼이 이집트의 용병들을 다 삼킨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방어 태세를 갖추라는 말은 "일어서서 준비하고 있어라" 라는 뜻인데 방어보다는 칼에 먹힐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일 것이다.
15절에서 새번역은 RSV를 따라 "힘센 황소" 라고 번역했다. 이 말은 창세기 49:24절에서 "야곱의 전능자" 라는 말에서 "전능자"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은 힘이 센 용사라는 뜻이다. 시편 22:13절에서 "힘센 소" 라는 뜻으로 쓰였다. 예레미야 8:16절에서는 "준마" 라고 번역했는데 힘센 말이란 뜻이다. 예레미야 47:3절과 50:11절에서는 힘센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무엇이든지 힘이 아주 센 것을 가리킨다.
개역에서는 "너의 장사들이" 라고 했다. 본인은 "너의 전능자들이" 라고 번역하고 싶다. 이는 이집트의 신인 Apis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Ptah가 거룩한 황소를 입고 온 것이 Apis라는 것이다. 황소는 고대 근동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쓰여져 왔기 때문에 농사를 짓던 이집트 사람들은 Apis의 상징으로 황소를 만들어 섬겼던 것이다. 그래서 새번역은 "너의 힘센 황소들이" 라고 한 것이다. 힘센 황소들은 이집트의 신 Apis를 상징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메어치셨기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16절은 유프라테스 강 가의 갈그미스에서 이집트 군대들이 참패한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것이다. 12절에서는 쓰러진 용사들에 용사들이 걸려 넘어진다고 했는데 16절에서는 수많은 군인들이 쓰러져 다른 군인들의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다. 쓰러진 군인들은 일어나서 우리 민족과 우리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삼키는 압제자의 칼 때문이다.
17절에서 이제 이집트왕 바로 호브라를 "기회를 놓친 떠벌이" 라고 부르라 했다. 이는 그가 승리를 장담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시드기야에게 큰소리치며 자신이 물리쳐 주겠다고 장담했기 때문일 것이다. 호브라는 수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바빌로니아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고 장담을 했던 것이다.
17절에서 큰소리치며 떠벌이기만 하던 시끄러운 왕 호브라와는 달리 18절에는 진짜 왕이 등장한다. 진짜 왕은 "나는 왕, 만군의 주!" 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죽은 신들인 우상들과는 달리 살아 계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맹세한다는 것이다. 이 맹세는 떠벌이 허풍쟁이 왕 호브라의 맹세와 대조되는 것이다.
이집트를 공격하는 군대는 산들 사이에 우뚝 솟은 다볼산과도 같고 바닷가에 높이 솟은 갈멜산과도 같다고 했다. 다볼산은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의 고향인 이스르엘(Jezreel) 평원에 있는 산이다. 넓은 평야에 홀로 1800 ft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엄청난 높이는 아니지만 평평한 곳에 급경사의 산이 서 있어 대단히 인상적인 산이다. 또 이와 대조되는 갈멜산은 지중해 바닷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1700 ft 높이의 산이다. 엘리야가 바알신의 선지자들과 맞서 싸운 곳이기도 하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렇게 크고 높이 솟은 산과 같다는 것이다. 절대로 맞서 싸워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19절은 "주민들, 이집트의 딸들" 이라고 부른다. 6:26절과 예레미야의 다른 몇 군데 에서 예루살렘 주민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고 불렀다. 이제 이집트의 주민들을 이집트의 딸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완전히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던 아픈 추억을 생각하며 이집트의 주민들도 그렇게 잡혀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이제 이집트의 멤피스도 예루살렘처럼 완전히 황무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20절에서 "예쁘디 예쁜 암송아지는 이집트이다" 라고 말한다. 물어뜯는 파리 떼들이 북쪽에서 암송아지 위로 몰려 온다는 것이다. 수많은 파리 떼들이 암송아지인 이집트를 물어 뜯는 그림이다. 이 파리 떼는 한국의 파리 떼들처럼 쇠 똥 위에 앉거나 소 잔등에 그냥 앉아있는 파리들이 아니다. 새카맣게 몰려들어 살을 물어 뜯고 피를 빠는 파리들이다.
또 21절의 용병들은 46:9절에서 바빌로니아 원정을 위해 고용한 용병들이다. 이들을 살진 송아지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쓸모 없다는 뜻이다. 살진 송아지는 잡아서 먹을 거리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위해 바빌로니아 군대들을 짓밟아 줄 힘센 황소들인 줄 알고 고용했는데 알고 보니 살진 송아지라서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잡아 먹힐 뿐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버티지 못하고 돌아서서 도망을 갈 뿐이라는 것이다.
22절은 몰아 닥친 바빌로니아 군대를 벌목하는 사람들로 비유하고 이집트를 뱀으로 비유한 것이다. 뱀은 이집트 사람들의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고 왕실의 상징으로 쓰이던 것이다. 본래 뱀들은 숲속으로 도망가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들은 도끼를 든 벌목꾼들처럼 진군해 온다. 그 때 뱀이 할 수 있는 것은 "쉭!" 소리를 내며 겁을 주다가 숲 속으로 달아날 뿐이다. 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뱀이 도망간다면 벌목꾼들은 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23절은 그런데 뱀이 숲으로 도망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의 벌목꾼들이 그 빽빽한 숲의 나무들을 다 메어낼 것이라는 것이다. 도끼를 든 벌목꾼들이 얼마나 많은 지 메뚜기 떼들보다 많다는 것이다. 중동지방이나 아프리카 북부의 메뚜기 떼들은 넓은 들판의 곡식들이나 농작물들을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벌목꾼들이 숲을 맨땅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뱀은 숨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24절은 딸 이집트의 백성이 북쪽에서 온 바빌로니아 군대들에게 넘겨져서 벌거벗겨지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인들처럼 그렇게 수치를 당한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도 어제 말씀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힘들이 아무리 강해 보이고 높아 보여도 절대로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벌목꾼들을 보내서 세상의 힘들의 은신처를 숲을 몽땅 베어내 듯 베어내고 그 뱀들을 도끼로 잘라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면 나중에는 예루살렘의 여인들과 이집트의 여인들처럼 수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힘들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특별히 날마다 말씀을 보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기에서 벗어난 경험이 쌓여 있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쉽게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 우리 삶의 순간 순간 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지 않으려면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