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3:8-13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왕을 시켜서 이집트를 치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을 죽게 하시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도 하나님 대신 바룩을 비난하며 이집트의 안전한 도시로 들어갔다.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한 이집트를 바빌로니아 왕을 통해 쳐서 전쟁과 전염병으로 죽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8절은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다바네스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왔다 라고 한다. 유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집트의 다바네스에 들어가자 주님의 말씀에 예레미야에게 왔다는 것이다. 그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벌이다.
9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행동이다. 큰 돌들을 날라다가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 앞에 묻으라는 것이다. 다바네스는 이집트의 왕궁이 있던 수도가 아니기에 바로의 집이라는 말은 관청의 건물일 것이고 바로가 가끔 와서 머무는 곳일 것이다. 포장된 광장이라고 번역한 말은 단순히 바로의 집 앞의 벽돌들이라는 뜻이다. 진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바로의 집 앞에 포장을 해 놓은 것을 일부 걷어내고 그 아래에 큰 돌들을 놓고 다시 벽돌을 놓으라는 뜻이다. 이 모든 행동은 유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라고 했다.
10절은 온 세상 모든 군대의 대장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바빌로니아 군대나 이집트 군대나 세상 모든 군대의 대장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 사람들에게 전하신 말씀은 예레미야가 놓은 돌 위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보좌가 놓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에 바빌로니아 왕의 보좌가 놓이는 경우는 바빌로니아가 이집트를 점령하는 경우 뿐이다. 예레미야는 나중에 바빌로니아 왕이 보좌를 놓고 이집트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을 재판할 재판석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11절은 바빌로니아 왕이 이집트를 치면 사람들은 전염병에 걸려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거나 칼에 맞아 죽거나 이 세가지 중 한가지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2절은 이집트의 신전들에 불을 지르고 신상들을 태우거나 전리품으로 가져간다고 했다. 마치 목동이 자기 옷의 벌레를 잡아 내듯이 이집트 땅을 깨끗하게 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13절은 태양 신전의 돌기둥들을 부수고 이집트의 신전들을 불살라 버린다고 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기원전 568-567년에 이루어진 것이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어져 있다. 남은 유다 사람들은 이집트는 강한 나라이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리로 피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왕을 시켜서 이집트를 깔끔하게 털도록 시키셨다는 것이다. 그곳으로 피난을 간 유다 사람들도 죽거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의 집 앞의 벽돌 포장을 걷어내고 그 아래에 큰 돌들을 묻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중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이집트로 피난 간 유다의 남은 자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시는 것을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신 것이다. 또 이 말씀이 성취된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생각을 따라 옳다고 생각하며 하는 행동들이 잘못된 것임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딱 한가지 뿐이다. 전염병에 죽고 남은 사람은 포로로 잡혀가고 또 피한 사람들은 칼에 맞아 죽는 것과도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하나씩 순종해 나가야 한다. 그 길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