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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43:1-7

Dawn Word

예레미야 43:1-7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이집트로 간 유다의 남은 자들

2019. 7. 5.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4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43:1-7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비난하지 못하고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속았다며 바룩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는 이집트의 안전한 도시로 들어갔다.

이전 말씀에서 이집트로 피난 가려던 남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요청에 따라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자 예레미야는 저들에게 완전히 망할 것을 경고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가 모든 말씀을 다 알려주자 남은 유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이집트 땅으로 가는 내용이다.

42:19-22절에서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43:1-3절에서는 남은 자들의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저들이 공식적으로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예레미야가 말을 마쳤을 때 아사랴와 요하난과 그 밖의 고집 센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고 말을 했다. 이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예언자의 말을 직접 공격하기를 두려워 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에 직접적으로 거부하길 두려워한 것이다. 그래서 3절에서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 이 예레미야를 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어느 정도 두려워하고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믿음은 아니다. 야고보의 말 대로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4절은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5절은 그들이 유다의 남은 사람들 모두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6절은 남자나 여자는 어른들을 가리킨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어린아이들이다. 어린아이들은 성별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다 다려갔다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공주에서부터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남겨 놓은 하층민들까지 다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7절은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연결하면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바네스에 도착했다" 라고 원어에서 말하고 있다. 새번역은 7절 끝부분을 8절과 연결했다. 8절 첫 부분이 그리고 이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문의 뜻은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집트 땅 경계로 들어갔고 마침내 다바네스 라는 도시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다바네스는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 지역의 요새화된 도시이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자신들 보기에 안전한 성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의 불순종은 마침내 그들의 행동으로 확증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집트로 가지 말라면서도 자신도 이집트까지 따라갔다. 어쩌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따라 갔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예레미야를 그대로 남겨 두고 간다면 계속해서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기에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말들과 저주의 말들을 계속 쏟아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들과 함께 있게 하면서 계속 마음대로 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강제로 함께 가자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유다의 남은 자들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예레미야를 데려 갔을 수 있다. 저들은 하나님을 위험할 때만 지켜주고 구해주는 존재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예레미야는 출애굽 시절의 모세처럼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간 셈이다. 출애굽 시절 모세는 사람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나왔으나 예레미야는 할 수 없이 따라갔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던 풍요의 땅에서 이끌어 내셔서 하나님만 섬기도록 인도하신 것인데 이제 저들은 다시 풍요의 땅이요 안전한 요새로 들어가면서 다시 우상들을 섬기고 살겠다는 뜻이다. 나올 때 40년 동안 광야 학교에서 교육 받고 훈련 받은 뒤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우상에 대한 아무런 방비 대책이나 맞서 싸울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지름길로 곧바로 들어갔기에 한 달도 안 걸렸을 것이다. 이는 역출애굽이다. 아니 입애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유다의 남은 자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예레미야에게 기도 요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인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생각할 때는 유다에 남아 있으면 바빌로니아 군대가 반드시 보복하러 올 것이고 자신들은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틀렸다고 하지 않고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속아 거짓말을 전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유다의 남은 자들의 지도자들을 쉽게 정죄하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배우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들의 생각이 충돌할 때는 하나님이 두렵기에 순종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에서 돌아서서 죽어도 가기 싫은 길을 가야 한다. 내 생각을 꺾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중심에서 주인노릇 하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은 위험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가는 길이고 자신들 생각에는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는 우리의 중심의 자리에 내려오고 그 자리에 성령님을 모셔야 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자신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걷는 안전한 성공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는 위험한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이다. 그 길만이 진짜 축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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