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7-22 이집트로 피난 가려던 남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결정한 것이 옳다고 확인시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자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남은 자들은 모두가 완전히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전 말씀은 이집트로 피난을 가려던 무리들은 예레미야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무조건 들을 테니 예레미야의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이집트로 가지 말고 그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듣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7절은이집트로 피난을 가던 무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 달라고 한 뒤 열흘이 지난 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열흘이면 200마일은 이동했을 시간인데 그 기간동안 초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 것이다. 피난을 가던 남은 유대인들은 정말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변 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바빌로니아 군대들이 말을 타고 순식간에 쫓아올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열흘 뒤 주님의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8절에서 가장 낮은 사람에서 가장 높은 사람까지 온 백성을 다 불러 놓고 말했다. 9절은 피난을 가던 여러분들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여러분의 간구를 전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 요청에 따라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예언의 말씀은 순전히 피난을 가던 유대의 남은 자들이 요청한 것을 전달한 것이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뜻이다.
10절은 이집트로 피난을 가지 말라는 것이다. 피난을 가지 않는다면 먼저 "내가 허물지 않고 세울 것이며" 라고 했다. 이는 건축물의 비유이다. 건물을 허물지 않고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와 짝을 이루는 비유는 나무의 비유이다. 나무를 뽑지 않고 심으시겠다는 것이다.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렸으니 이제 내가 뜻을 돌이키겠다" 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두 쌍의 비유의 해설이다. 유다의 남은 자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피난을 가지 말고 그 땅에 그대로 머물러 살라는 것이다.
11절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파헤치며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그 바빌로니아 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다. 지금 열흘이나 지체하며 기다리면서 두려움은 극대화된 상황인 데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 적이 쳐들어 온다 해도 구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또 적의 손에 넘어간다 해도 건져내 주시겠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12절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미 바빌로니아로 잡혀간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바빌로니아 왕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그렇게 돌려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남은 자들의 기도 요청은 요즘 젊은이들 말 대로 "답정너" 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이다. 자신들은 무조건 이집트로 가겠다는 태도이다. 그 길이 복되다고 해 주어서 자신들의 두려운 마음만 없애 달라는 뜻이다.
그러한 저들의 태도를 아시는 하나님은 13-14절에서 그 땅에 머물러 살라는 말에 순종하지 않고 이집트로 가겠다는 저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그 땅에 남아있는 것만큼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집트 땅으로 가야만 전쟁도 겪지 않고 비상나팔 소리도 듣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지도 않아도 되니 이집트에 가서 살겠다는 것인지 책망하고 계신다.
15-16절은 만약 계속 고집하고 이집트로 내려간다면 전쟁이 쫓아가고 기근이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17절은 이집트로 내려간 사람만이 아니라 내려가기로 작정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쟁과 기근에다가 전염병까지 추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로 내려갔든지 아니면 가려고 마음 먹든지 단 한사람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18절은 모든 군대의 지휘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쏟아 부었던 큰 분노와 같이 이집트로 가거나 가려고 마음 먹은 남은 자들에게도 쏟아 부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원망과 놀라움과 저주와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유대 땅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19절은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했고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다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제 모두 망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20절은 남아있던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이는 42:5절에 나온 대로 예레미야를 하나님께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뭐든지 다 알려 주기만 하면 그대로 지키겠다고 맹세까지 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9절에서 예레미야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 뒤 20절에서는 전적으로 남은 자들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하나님 앞에 담보로 제시하고 사기를 친 것이다.
21절은 예레미야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남은 자들이 부탁한 그대로 하나님께 가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다 전달하고 임무를 마쳤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은 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22절은 그러므로 이제 정착하려는 이집트에 가서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곳에 다 죽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 두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유다의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가는 길이 맞다고 확증해 주셔서 두려움을 없애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저들은 하나님께 "답정너!"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최고로 교만하고 건방진 태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쉽게 욕할 수 없다. 우리도 우리가 답을 미리 정해 놓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않은 답을 주시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을 가라고 하시면 그 말씀은 하나님 뜻이 아닐 것이라며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길을 가면서 그 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는 지독한 교만이다.
오늘날 많은 믿는 자들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의 남은 자들과 도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잘 듣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따른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도 하나님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망할 짓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겠다고 말하고 찬송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원하는 것만 골라서 듣고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발 아래 두는 행위이다. 우리는 죽도록 싫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따라야 한다. 순종이란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품고 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성령 충만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