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1:4-18이스마엘은 그달리야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까지도 몰살시키고 그를 따르던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다가 요하난에게 저지를 당하고 도주했다. 요하난은 바빌로니아의 보복이 두려워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려고 베들레헴 근처에서 잠시 멈추었다.
이전 말씀에서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고도 이스마엘을 신뢰하며 대했지만 이스마엘은 당시 사람들의 관습법을 어기고 잔치 자리에서 잔치를 베푼 주인인 그달리야를 암살했다. 대적인 바빌로니아에 협조하는 매국노로 규정하고 죽인 것이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마엘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다가 도주한 내용이 이어진다.
4-5절은 북왕국 이스라엘 지역인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온 여든 명이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예배를 드리러 왔다. 북왕국 이스라엘에도 기원전 622년 요시야의 개혁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들이 슬픔을 표시한 것은 성전이 무너진 것에 대한 것이다.
6-7절은 이스마엘이 이렇게 예배하러 온 사람들을 속여 죽이는 장면이다. 이스마엘은 거짓으로 우는 척 하면서 성전이 무너진 것에 대해 이들과 함께 깊이 공감하는 척 했다. 또 이스마엘은 자신이 그달리야의 이름으로 대신 온 것처럼 가장하며 환영하고 그달리야에게 가자고 속였다. 이스마엘은 그들을 유인하여 모두 쳐 죽였으나 그 중 열사람은 곡식과 기름과 꿀을 숨겨 두었다고 했기에 살려주었다. 이스마엘은 그달리야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죽여서 아무도 자신이 그달리야를 살해한 것을 문제삼지 못하게 하려고 한 행동일 것이다.
9절은 이스마엘이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저지하려고 파 놓은 물 웅덩이라고 했다. 이는 역대하 16:1-6절과 열왕기상 15:22절에 나온다. 아사왕은 우상의 신전을 파괴하고 개혁을 했던 왕이지만 하나님보다 벤하닷을 의지하여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공격하고 바아사가 라마에 남기고 간 건축 재료들을 옮겨다가 물 웅덩이를 만든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 웅덩이를 그달리야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을 죽여 시체로 메워버린 것이다. 이는 이스마엘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다메섹 왕 벤하닷을 의지해서 만든 물 웅덩이를 메워버린 것이다. 이렇게 과거 아사왕이 이루어 놓은 역사를 시체로 메꿔버린 것은 바빌로니아 왕의 편에 서는 자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응징하겠다는 뜻이다.
10절에서 이스마엘은 미스바에 남아있던 모든 백성과 공주들을 포로로 사로 잡았다. 이들은 바빌로니아 왕의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달리야에게 맡겨 놓은 백성들이라 했다. 공주란 시드기야의 딸이라기 보다는 왕족의 딸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스마엘은 바빌로니아 왕이 했던 것을 흉내내서 바빌로니아 왕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달리야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암몬 사람에게 끌고 가려는 것이다. 같은 동족인 이스마엘은 바빌로니아 왕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자기 백성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12절은 요하난이 이스마엘이 저지른 범죄 소식을 듣고 추격하여 기브온 근처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13-15절은 이스마엘은 도망가고 이스마엘이 포로로 잡아가던 사람들은 요하난을 따라가는 장면이다. 16-17절에서 요하난은 이스마엘이 포로로 잡아 데려가던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려다가 베들레헴 근처에서 쉬는 장면이다. 18절은 요하난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려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죽인 것에 대해 바빌로니아 왕이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스마엘은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고 성전도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잡아 간 악한 대적 바빌로니아 왕에게 협조한 사람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한다고 이렇게 잔혹한 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따라 심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유다 백성들을 바빌로니아를 통해 심판 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회개했어야 했다. 그런데 교만한 이스마엘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서 바빌로니아를 대적하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거룩하지 못하다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할 때가 있다. 이스마엘처럼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가지 않았으니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알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다른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비난하고 마음으로 정죄하는 행위 역시 이스마엘처럼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형제 자매들에게 잔혹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특별히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스마엘처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
우리가 보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쓰시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나는 옳고 믿음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잘못되었다며 비난하고 적대시하는 행위가 어쩌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경솔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스스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말씀을 많이 배우고 깨닫는 것을 경건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생각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알고 깨달으면 자신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면 나중에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정죄하여 결국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하는 자가 된다.
이스마엘처럼 스스로 나서서 비난하고 정죄하고 스스로 응징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말씀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자신에게 응징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으신 것처럼 참고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인해 점점 더 겸손한 종이 되어 말없이 공동체를 섬기지 못한다면 차라리 말씀을 잘 알지 못하여 말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