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13-41:3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고도 이스마엘을 신뢰하며 대했지만 이스마엘은 당시 사람들의 관습법을 어기고 잔치 자리에서 잔치를 베푼 주인인 그달리야를 암살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왕을 통해 그달리야를 통치자로 세우시고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게 하시고 풍성한 수확도 주셔서 회복되게 하셨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회복시키려고 세운 정치 지도자가 암몬 왕이 보낸 이스마엘에게 살해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13-14절은 왕족인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신임 총독 그달리야를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이 알려 주었으니 그달리야는 믿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죽이고 자신이 유다를 통치하려던 것 같지는 않다. 9절에 보면 거사에 성공한 뒤에도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암몬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스마엘은 바빌로니아 편에 협조하며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려는 그달리야를 죽이고 그달리야를 따르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바빌로니아를 후방에서 괴롭히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마엘은 시드기야를 위협하며 예레미야를 죽이려던 왕의 신하 중에 중심인물일 것이다.
15-16절에서 이스마엘의 음모를 그달리야에게 알렸던 중심인물인 요하난은 자신이 이스마엘을 몰래 암살하겠다고 한다. 만약 그달리야가 죽게 되면 다시 모여 회복되고 있는 유다 사람들이 다시 흩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을 믿는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린다. 그달리야는 부하들을 믿어주고 투명하고 정직한 정치를 하려했던 사람일 것이다.
41:1-2에서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만나러 부하 열명을 데리고 미스바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달리야를 살해했다. 그달리야는 부하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는데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지 않았고 이스마엘을 전적으로 신뢰해 준 것이다. 우리는 그달리야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관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달리야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이스마엘이 아주 비열한 것이다. 그달리야는 관습에 따라 손님을 환대한 것 뿐이다. 당시 그 지역의 관습법을 어긴 충격적인 행동이다. 손님으로 초대받은 사람은 그 잔치 자리에서 만큼은 서로 적이라 해도 잔치의 주인을 존중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잔치 자리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을 죽이는 것만큼 악랄하고 비열한 행위는 없다.
3절에 보면 이스마엘은 그 자리에 함께 식사하고 있던 모든 유다 사람들과 그 곳에 와 있던 바빌로니아 군인들까지 죽였다. 이스마엘의 적대감은 사실 그달리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에 대한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세운 총독을 죽이고 바빌로니아 왕이 남겨두고 간 소수의 군인들을 죽임으로서 바빌로니아 왕을 괴롭히려고 한 것이다.
이는 이스마엘 혼자만의 뜻이 아니라 시드기야의 신하로 있던 다수의 사람들의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며 끝까지 항복하지 못하도록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이 바빌로니아 군대를 쫓아내고 나라를 되찾는 일이며 하나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하며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를 통해 유다를 심판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보낸 바빌로니아를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정결한 믿음으로 회복되길 바라신 것이다. 그달리야는 그래서 바빌로니아와 싸우기 보다는 받아 들이면서 그 백성들을 모아 다시 농사짓고 살면서 표시 안 나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스마엘파와 그달리아파가 있다. 오늘날도 이스마엘 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가 단합해서 악한 무리들을 몰아내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이고 선동적이어서 많은 성도들이 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외치지만 사실은 교회와 국가권력을 통합하여 자신들이 존귀와 영광을 누리려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이런 지도자들은 말로는 성시화 운동을 하자고 한다. 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게 전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는 것은 중세 교황과 같은 절대 권력을 교회가 갖는 것이다. 본래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순수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건국 초기에 이러한 청교도들이 세운 교회가 성장하고 기독교가 국교화 되고 교회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자며 떠드는 선동가적 기독교 지도자들의 꿈도 역시 하나님을 내세워 교회가 절대권력을 쥐려는 것으로 이스마엘파 지도자들이다.
반대로 그달리야파 지도자들은 그달리야처럼 흩어져 방황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다시 농사를 짓게 하고 백성들 하나 하나가 굶주리지 않도록 돌보는 일에만 집중하는 지도자이다. 굶주리고 방황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불러모아 다시 하나님 말씀의 밭을 일구고 가꾸며 말씀에서 귀한 양식을 얻어 각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지도자가 그달리야파 지도자이다. 그렇게 해서 각 사람들이 영적으로 회복되면 나중에는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로 회복이 되는 것이다.
그달리야처럼 사람들의 회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 하나 하나를 말씀으로 먹여 회복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함께 단합하여 악한 세력들을 쳐 부수자고 선동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 빙자 사기죄를 짓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겸손히 순종하면서 사람들을 신뢰하고 말씀으로 먹이는 일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양떼를 잘 돌보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존경 받는 자리에 서지 못하더라도 말없이 사람들을 모으고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도우며 각 사람의 영적 회복에 힘쓰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도 스스로 드러나는 자리에 높이 서지 않으셨다. 이스마엘처럼 사람들을 선동하여 적들과 싸우자고 하지도 않으셨다.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기간 내내 낮은 자리에서 종의 모습으로 겸손히 제자들을 섬기며 가르치시는 일에만 주력하셨다. 뉴올리언즈 신학교의 석사과정에는 전공과 상관없이 Servant Leadership 이라는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모두 그렇게 예수님처럼 종의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양떼를 돌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