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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36:27-32

Dawn Word

예레미야 36:27-32

찢어버린 말씀을 다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

2019. 6. 18.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36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36:27-32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이 찢어 태워버린 말씀을 예레미야를 시켜 다시 적게 하시고 자세한 내용을 추가하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옷을 찢지 않고 두루마리를 찢어 태워버리고 그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와 그 말씀을 기록한 바룩까지도 찢어 버리려고 체포 명령을 내렸다. 오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다른 두루마리를 구해 다가 다시 적어서 여호야김에게 전하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27-28절은 왕이 칼로 찢어 불태워버린 여호와의 말씀을 모두 그대로 다시 적으라는 명령이다. 여호야김은 그 두루마리 찢어 버리면 그 말씀에 담긴 심판의 내용도 사라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자기 옷을 찢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기록되어 남아있든 남아있지 않든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루마리를 없앤다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9절은 여호야김이 예레미야에게 한 말과 행동을 여호야김에게 확인 시키는 내용이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에게 왜 바빌론 왕이 와서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라고 썼느냐고 말하고는 그 두루마리를 다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지어낸 말로 폄하하며 하나님을 거부했고 그 말씀까지 다 찢어 태워버린 죄를 지은 것이다. 이는 마치 법정에서 최종 판결을 하기 위해 그 지은 죄를 다시 말해주는 것과도 같다.

30절은 죄목을 낭독한 뒤 판결하는 내용이다. 이제 여호야김 왕의 자손 가운데는 다윗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체는 무더운 낮에도 추운 밤에도 바깥에 버려져 뒹굴 것이라 했다. 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바깥에 버려져 있는 모습은 최고의 불명예의 상징이다. 존귀한 자가 가장 비천하다 못해 처참한 꼴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죽은 들짐승처럼 버려지고 짐승들이 파 먹고 벌레들이 뜯어먹는 모습을 사람들이 지나가며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찢어서 태워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를 낮에는 뜨겁게 타는 태양이 내리쬐고 밤에는 얼어붙는 사막의 기후에 내던지시는 것이다.

31절은 여호야김과 그 자손들만 그렇게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신하들도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신하들에게도 모든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두루마리를 찢어서 태운 여호야김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접 찢은 여호야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죄인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공범이라는 것이다.

32절은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구해 다가 바룩에게 주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불러주어 받아 적게 하는 모습이다. 새로 기록한 두루마리는 여호야김이 태워버린 것과 똑 같은 복사본은 아니다. 처음 두루마리에 기록된 내용들은 다 들어있고 많은 내용들이 추가된 것이다. 그 추가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찢어 버리고 그 신하들도 그 말씀을 거부한 것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오늘날도 성경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이다.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신학자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훌륭한 도덕 선생이요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사회 사업을 했던 사회사업가로만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구약을 연구할 때는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의 문헌들 에서 성경과 비슷한 내용들을 찾아내어 성경이 영감 받은 말씀들이 아니고 그런데서 베껴왔다고 주장한다. 신약을 연구할 때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신 말씀과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섞여 있다며 기적 이야기와 치유 이야기는 다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제자들이 꾸며낸 신적 존재인 예수는 사라지고 진짜 이 땅에서 살았던 예수가 어떤 사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역사적 예수 찾기 운동이라고 한다. 현대의 지성인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연구가 합리적이고 옳다며 따른다.

이렇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만 성경을 발기발기 찢는 것이 아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 들이고 목숨 걸고 지킨다는 사람들 중에도 성경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에서 격려가 되는 긍정적인 말씀과 복을 주신다는 말씀만 골라서 전하고 받는 자들도 역시 여로보암이다. 교회 성장학파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저주와 심판의 말씀들을 전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니 그런 말들은 빼고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 역시 하나님 말씀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과 같은 말씀들은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연구하지도 않고 문맥에 따라 해석하지 않으면서 깊이 묵상한다는 사람들도 역시 성경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로 취급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신비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 나타난 묵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묵상이란 말 자체는 글자를 모르던 고대 사람들이 성경을 간직하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암송한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수천년 전에 기록된 것이기에 반드시 언어를 공부하고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을 공부한 뒤 문맥에 따라 읽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고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힌두교나 도교를 믿는 사람들처럼 눈을 감고 오래 있으면 영적인 능력을 힘입어 저절로 알게 하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도 찾고 다른 번역본들도 찾아 보고 콘코던스 같은 것도 찾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뒤에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마음 속으로 암송하다가 그 깊은 뜻을 깨닫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묵상이라는 말의 뜻이다.

이러한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반드시 여호야김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자들의 말이 옳다며 따라가는 사람들 역시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그 의미를 깨닫고 안다고 해도 삶으로 실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역시 심판을 받을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인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21-23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며 주님 앞에서 치워 버리실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그 의미를 깊이 깨닫고 자기 가슴을 찢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 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말씀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만 옷을 찢으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여호야김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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