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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36:21-26

Dawn Word

예레미야 36:21-26

자신의 옷 대신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찢은 여호야김 왕

2019. 6. 17.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36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36:21-26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옷을 찢지 않고 두루마리를 찢어 태워버리고 그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와 그 말씀을 기록한 바룩까지도 찢어 버리려고 체포 명령을 내렸다.

이전 말씀에서 바룩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으라 했고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안전한 곳에 따로 두고 왕에게 그 말씀을 전했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그 말을 들은 왕이 두루마리를 찾아다가 태우는 모습이 이어진다.

21절에서 왕이 고관들에게 전해 들은 내용은 바룩이 낭독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일 것이다. 왕은 여후디를 시켜 그 두루마리를 찾아오게 했다. 고관들은 그 두루마리를 안전한 곳에 숨겼지만 왕이 추궁을 하자 어디에 숨겼는지 말을 했을 것이다. 고관들은 왕이 그 두루마리를 태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은 목숨이 두려워서 일 것이다. 여후디는 왕과 영 곁에 서 있는 모든 관리들의 귀에 들려 주었다. 22절은 왕 앞에는 불 피운 난로가 있었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23절은 여후디가 두루마리를 서너 줄 읽어갈 때마다 왕이 칼로 잘라 난로에 던져 넣는 모습이다. 히브리인들은 한자처럼 세로로 기록했기에 옆에 서서 두루마리가 옆으로 조금 밀려 나오기만 하면 바로 바로 잘라 난로에 넣은 것이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왕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다. 24절에 보면 그런데도 왕과 그의 신하들은 하나님 말씀을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면서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않았다. 열왕기하 22:11절에서 요시야가 그 옷을 찢은 것과 완전히 대조가 된다.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었는데 여호야김 왕은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찢은 것이다. 23절에서 잘라버렸다는 말이 옷을 찢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두루마리를 없애 버리기만 하면 그 두루마리에 담긴 심판의 메시지도 사라진다고 믿은 것이다. 왕은 하나님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무시했기에 말씀도 그렇게 무시한 것이다.

25절에서는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에게 두루마리를 태우지 말라고 간청까지 했으나 왕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12절에서 사반의 손자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전해주는 말을 들었던 고관들이다. 그것을 말린 사람들은 12절에 나온 다섯사람 중 세 사람 뿐이다. 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두루마리를 찢지 말라는 말은 두루마리를 찢는 행동을 멈추고 대신 옷을 찢으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26절은 두루마리를 다 없애 버린 왕이 그 두루마리를 기록한 두 사람도 없애 버리는 장면이다. 왕은 왕자와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서기관 바룩과 예언자 예레미야를 체포하라고 했다. 왕은 두 사람만 없애 버리면 하나님의 심판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두 사람을 숨기셨다. 왕은 두루마리는 태워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없애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호야김 왕은 열왕기하 22장의 요시야 왕과 대조된다. 요시야는 읽어주는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지만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찢었다. 요시야는 자기 자신에게 분노해서 자기 자신을 찢는 것의 상징으로 자기 옷을 찢은 것이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분노해서 그들이 기록한 두루마리를 찢은 것이다. 여호야김의 분노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예레미야와 바룩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옷을 찢어야 하는데 남의 옷을 찢은 셈이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성도들의 문제도 역시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지 않고 남의 옷을 찢는 것이다. 자신은 말씀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말씀대로 살지 않느냐며 분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주일 설교를 듣고 나면 자신의 옷을 찢어야 하는데도 이 설교는 아무개가 들어야 한다며 가슴 아파 하지 않고 재미있어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옷을 찢으며 애통하고 회개하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 아니라 남의 잘못을 까발리며 수다를 떠는 말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씀을 배우고 나서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고 남을 비추어 보고 왜 회개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느냐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남의 옷을 찢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찢는 행위이고 하나님의 옷을 찢는 행위이다. 교만해 져서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호야김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기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언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은 아무개가 듣고 회개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의 옷을 찢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옷을 찢게 하는 것은 우리의 충고나 책망이 아니다. 어떤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도 그렇게 책망할 자격이 없다. 옷을 찢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각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각자가 자기 옷을 찢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남의 옷을 찢고 싶다면 먼저 자기 옷을 찢고 나서 나는 이러한 말씀에 가슴이 찔려 내 옷을 찢었노라고 그 받은 말씀을 나누어 주라. 그러면 상대도 다 알아 듣는다. 그래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찢어 놓으실 것이다. 우리가 직접 말로 지적질하고 책망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교회를 찢어 놓는 행동이 될 뿐이다. 절대로 직접 그것을 자기 입으로 말하며 책망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다 옷을 찢어야 할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가 의롭지 못하다고 분노하며 책망하는 사람들은 여호야김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 행동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위에 앉아 하나님 노릇을 하는 여호야김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분노를 표출하고 남을 비판하면 여호야김이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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