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6:9-20 바룩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으라 했고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안전한 곳에 따로 두고 왕에게 그 말씀을 전했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듣고 회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성읍의 모든 주민들에게 읽어 주라고 했고 바룩은 예레미야의 명대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읽어 준 것에 대한 고관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이 고관들은 직접 정치를 담당하는 왕의 신하들이라기 보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보관하고 가르치며 왕에게 조언을 하던 모사들이었을 것이다.
9절은 바룩이 주님의 말씀을 낭독한 때가 나와있다. 때는 기원전 604년 12월이다. 22절에 보면 왕 앞에 불 피운 난로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추운 날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 예루살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유다에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들어온 모든 사람들에게도 금식하라는 선포가 내려졌다.
10절은 그 때 바룩에 성전에 들어가서 주님의 말씀을 낭독한 장소가 나와 있다. 그 장소는 요시야 왕 때 두루마리를 읽었던 사반 서기관과 연결이 된다. 열왕기하 22:2-23:3절에 나오는 요시야 왕 때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읽었던 일과 오늘 말씀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바로 그 때 두루마리를 읽었던 사람이 사반인데 사반의 아들이 바로 그마랴이다. 성전의 그마랴의 방에 가서 바룩은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읽었다.
11-13절은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그 말씀을 다 듣고 고관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다. 그마랴의 방에는 사반의 손자이고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앉아 있었다. 11절은 미가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었다. 12절에서 미가야는 왕궁에 있는 서기관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모든 고관들이 앉아 있었다. 고관들 중에는 악볼의 아들 엘라단이 있다. 악볼은 요시야 왕 때 백성들에게 두루마리를 읽었던 서기관이었다. 그곳에는 사반의 아들 그마랴도 있었다. 그마랴는 미가야의 아버지인 셈이다. 13절은 미가야가 바룩에게 들은 모든 말들을 그 고관들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열왕기하 22장의 두루마리 낭독한 사건과 계속 연결되지만 그 반응은 전혀 다르다.
14절은 미가야가 전하는 말을 들은 고관들이 바룩을 불러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는 장면이다. 15절은 고관들이 바룩에게 그 두루마리를 낭독하여 들려 달라고 한다. 16절은 고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놀라 임금님께 아뢰겠다고 했다. 놀랐다는 말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17절은 놀란 고관들이 그 말씀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묻는 장면이다. 18절은 예레미야가 불러준 것을 바룩 자신이 받아 적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고관들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숨으라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숨으라고 한다. 고관들은 왕이 예레미야와 바룩을 틀림없이 죽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6:20-23절에 보면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우리야를 여호야김 왕이 이집트까지 사람을 보내 잡아다가 죽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바룩도 틀림없이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으라고 한 것이다. 20절에서 고관들은 두루마리를 따로 보관하고 왕에게 그 말을 전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고관들은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했고 예레미야와 바룩을 보호해 주려고 숨으라고 한 것이다. 예레미야와 바룩을 보호해 주려고 한 것은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다. 고관들이 그 말씀을 왕에게 전한 것도 혹시나 왕도 그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며 회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고관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안전한 곳에 두고 몸만 가서 왕에게 그 말을 전했다.
하나님 말씀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을 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전하는 사람이 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귀하기 때문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보존하고 듣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