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1-15 하나님께서는 바빌론 왕의 군대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예레미야에게 사촌이 팔아먹은 땅을 사서 그 문서를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라고 하시며 다시 회복시켜 주실 약속을 눈으로 보게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사방의 벽을 재건하시고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바빌론 군대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예레미야가 밭은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에 대한 예화로 보여준다.
1절에 나오는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은 기원전 588-587년으로 느부갓네살 18년과 맞는다. 2절은 그 때에 예루살렘은 바빌론 왕의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고 예레미야는 갇혀 있었다. 갇혀 있는 이유는 3절에 나오는 대로 불길한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답답한 왕은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예레미야가 재수없는 예언을 해서 그 예언대로 되었다고 예레미야를 책망한다.
그 예언의 내용은 4절에 나오는 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도 바빌론 군대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빌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직접 항복할 것이다" 라는 말은 원어대로 직역하면 "그는 그의 입과 함께 그의 입으로 말할 것이고 그의 눈과 함께 그의 눈으로 볼 것이다" 라는 뜻이다. 적국의 왕에게 잡혀 넘겨지고 적국의 왕을 만나 마주 바라보고 말하는 경우는 항복하는 경우 뿐이다. 5절은 시드기야가 바빌론까지 끌려가고 주님께서 다시 그 백성들을 찾아 오실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이다. 바빌론 군대와 싸워도 이기지 못한다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은 것은 그 책임을 예레미야에게 돌리려는 것이다. 시드기야 왕과 그 백성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재수없는 예언을 한 예레미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는 파렴치한 모습이다. 그러자 6절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또 전달한다. 그 내용은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와 받을 사라고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레미야의 사촌 하나멜은 가난하여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판 것이다. 이는 레위기 25:25-31절에 나온 것이다. 가난해서 땅을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밭을 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땅이 다른 지파에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멜에게는 사촌인 예레미야보다 더 가까운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거절한 것이다. 그래서 룻기 4:1-2에 나오는 것처럼 그 다음 가까운 친척인 예레미야에게 자신이 팔아먹은 땅을 사서 율법에 따라 가문의 땅을 지키게 해 달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8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멜이 찾아와서 밭을 사달라고 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나님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9-12절은그 밭을 사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땅을 사는 것은 정신이 나간 행동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한대로 유다가 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이미 적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런 상황에서 땅을 산다는 것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행동이다. 그냥 큰 돈을 버린 것이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가 멍에를 메고 다니던 것과도 같은 행동이다. 예레미야의 이상한 행동은 온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13-15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밭을 산 뒤에 많은 증인들 앞에서 바룩에게 부탁한다. 예레미야의 매매 계약서를 옹기 그릇에 담아 오랫동안 보관해 달라는 것이다. 문서를 옹기에 담아 보관하는 것은 최소한 수십년에서 몇 백 년 동안 보관할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문서들도 모두 옹기에 담겨 동굴안에 있었던 것을 2000년이상 지나서 발견했는데도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중에 후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중에 분명히 유다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15절에 나온 대로 때가 되면 하나님은 다시 바빌론으로 잡혀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셔서 다시 집과 토지를 매매하며 살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뒤에 보면 이는 예레미야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대로 사촌이 찾아와 밭을 사달라고 부탁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한 것 뿐이다.
우리도 때로는 바빌론 왕의 군대에 포위된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그러한 정신 나간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그렇게 순종할 때 우리 자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