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1-32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면서 자손들에게도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것이지만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거짓 예언을 따르며 자기들 뜻대로 살기에 모두 망할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리며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지만 그것은 스스로 쇠 멍에를 만든 셈이고 하나님께서 지워 주신 멍에는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씀이 나왔다. 이제 오늘 말씀은 금방 돌아온다는 희망을 버리고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70년동안 그곳에 살게 하실 것이지만 그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고 한다.
1-15절은 바빌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절은 이 편지의 수신자가 바빌론으로 잡혀간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백성이라고 밝힌다. 2절은 편지를 보낼 때의 상황을 설명한 것인데 왕과 왕의 가족들과 고관들과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이 모두 다 잡혀간 다음이라고 밝힌다. 3절은 누구를 통해 편지를 보냈는지를 밝힌 것이다. 편지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보낸 사신의 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4절은 만군의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5-6절은 돌아올 생각 버리고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라는 내용이다. 5절은 짓고 심고 먹으라고 한다.거짓 선지자들 말을 따른다면 2년후면 돌아올 것이기에 그렇게 할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곳에 정착해서 계속 살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6절은 아내를 취해서 아들 딸 낳고 또 너희 아들들을 위해서도 아내를 얻으라는 것이다. 딸도 결혼시켜 보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계속 번성하고 줄어들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7절은 원수들이 평화를 누리도록 계속 방법을 찾으며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노력할 뿐만 아니라 원수들의 도시가 평화를 누리도록 하나님께도 기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평화 안에서 너희가 평화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바빌론이 2년 안에 망한다면 잡혀간 포로들이 석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 또 노예로 팔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원수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또 원수들의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도 기도하면서 원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보호받고 확장될 것이다.
8절은 거짓 예언자들이나 점쟁이나 꿈쟁이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이다. 9절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곧 돌아갈 것이라고 거짓된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10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한다. 70년을 다 채우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나의 은혜로운 약속" 이란 "나의 좋은 말" 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잡혀간 사람들을 바빌론에서 고난 중에 연단 시켜서 믿음으로 잘 양육하신 다음에 70년이 지나면 돌려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절망적인 말 같지만 진짜로 좋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11-13절은 그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계획은 완전히 정해졌다는 것이다. 11절은 하나님의 계획이 재앙이 아닌 번영이라고 했다. 번영이란 히브리어로 "샬롬" 이라는 말인데 평화 라는 뜻이다. 이는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죽는 것의 반대말이다. 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 평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원어에서는 미래를 주고 희망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12절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호소를 들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13절은 온 마음을 다해 찾으면 만날 것이라 했다.
14절은 어떻게 만나 주시는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원어는 너희들에 의해서 발견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 발견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만나 주신다는 것은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뜻이다. 70년 후에 돌아가게 해 주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자신의 자손의 자손들이 그 약속을 놓치지 않고 계속 붙잡고 살도록 기도하며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약속이 70년 후 성취됨으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15절은 이러한 편지를 받은 바빌론 사람들의 반응이다. 바빌론에 있는 우리를 위해서도 예언자를 일으키지 않았느냐 는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언을 주시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고향에 두고 온 친척과 동포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16-20절은 그렇기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남아있는 왕과 모든 백성들에게 주신 예언이다. 그렇지만 이는 잡혀간 사람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16절은 이 예언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힌 것이다. 17절은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평화의 반대말이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11절에 나온 평화의 반대인 재앙을 뜻하는 것이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셔서 썩은 무화과처럼 만드신다는 것이다.
새번역 번역자는 17절과는 달리 18절에서는 원어 그대로 전쟁을 칼이라고 번역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뒤쫓아가서 치신다는 것이다. 살아 남아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은 재수 복 터졌고 잡혀간 사람들은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잡혀간 사람들은 벌거벗겨지고 매를 맞으며 1500마일을 걸어가야 했다. 그렇기에 남아 있거나 이집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화를 누리고 잡혀간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정 반대이다.
19절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고 잡혀간 사람들에게는 평화인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문제는 잡혀가고 잡혀가지 않고 의 차이가 아니다. 잡혀간 사람들은 바빌론 강가에서 울면서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회개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잡혀간 사람들은 율법을 정리하고 자세한 해설집도 만들어서 자손들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가르치며 순종하며 산 것이다. 그러나 남아있거나 피신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재난을 피한 줄로 생각하고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을 계속해서 듣지 않은 것이다.
20절은 다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말한다며 들으라고 한다. 21절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거짓 예언자들에게 한 말이다. 골리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거짓 예언자들일 것이다. 이들이 느부갓네살의 손에 죽는 것은 이들이 거짓 예언에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부추겨서 바빌론을 대적하여 반역을 일으키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빌론 군대를 몰아내실 것이라며 함께 싸우자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까지 옮긴 무지한 자들이다.
22절은 이들이 바빌론 왕에게 화형을 당한 것을 가지고 저주하는 말이 생긴다는 것이다. 23절은 이들이 한 또 다른 잘못을 밝힌다. 그것은 이웃의 아내들과 간음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 예언을 하고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이다. 이들만 화형 당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거짓 예언을 따라 바빌론에 반역한 사람들은 바빌론 사람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들의 거짓말에 주님이 증인이라는 것이다.
24-25절은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 중에 스마야라는 거짓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과 제사장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바빌론으로 보낸 것과는 반대로 스마야는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26-29절에 나온다.
26절은 스마야의 편지 내용은 미친 예언자 예레미야를 벌하라고 스바냐 당신을 제사장으로 세웠다는 것이다. 27절은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28절은 예레미야가 편지를 보내 바빌론에 정착하라고 했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예레미야는 미쳤다는 것이다. 스마야는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속히 돌려 보내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29절에서 스바냐 제사장은 이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읽어 주신 것이다.
30-32절은 스마야에 관한 예언을 바빌론에 끌려간 모든 포로들에게 전하라고 주신 내용의 편지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스마야를 보낸 적이 없는데도 예언자 행세를 하며 거짓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스마야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했으니 자손을 보지 못할 것이라 했다. 70년간 포로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기대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스마야는 자손이 끊길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예루살렘의 복을 누리며 살 자손들이 스마야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당시 실제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다. 평화를 누린 사람들은 잡혀가지 않고 남아 있거나 이집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 반대로 말씀하고 계신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평화를 누릴 것이고 그 땅에 남아서 하나님의 에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 뜻대로 사는 자들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하나님과 세상 부귀영화를 겸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가난과 질병과 힘든 일들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도 예레미야 때와 같이 사람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정 반대이다.
핵심은 부귀영화를 누리느냐 고통 중에 살아가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순종하느냐? 아니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믿으며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따라 가느냐 에 달린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게 진정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