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8:1-17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리며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지만 그것은 스스로 쇠멍에를 만든 셈이고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멍에는 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만들어 모든 왕들에게 보내며 바빌론 왕의 멍에를 맬 것을 예언하라 하셨고 유다 왕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전하며 듣고 순종하면 살 것이고 듣지 않으면 완전히 망할 것이라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27장에서 상징으로 사용된 멍에를 가지고 예언으로 선지자들끼리 전투하는 모습이 나온다.
1절에서 시드기야 왕 4년 다섯째 달은 기원전 594-593년에 해당된다. 하나냐는 기브온 사람이라고 했는데 기브온은 여호수아 9:1-15절에서 여호수아를 속인 사람들이다. 공교롭게도 기브온 사람인 하나냐는 이제 거짓 예언으로 왕과 백성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2-4절은 하나냐가 바빌론 왕의 멍에를 꺾고 이년 안에 모든 기구와 왕과 잡혀간 사람들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거짓 예언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4절 끝에서도 멍에를 꺾는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해서 말했고 "주의 말이다" 라는 말도 두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면서 자신의 예언이 진짜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과 백성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5-6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희망사항이 바로 예레미야 자신의 희망사항이라고 빈정거린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빈정거리는 것이다. 7-9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냐와 온 백성들에게 하는 말을 들으라며 예레미야 이전 예언자들이 전쟁과 기근과 염병이 닥칠 것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냐는 뜬금없이 평화를 예언하니 그 말이 성취되어야 진짜 예언자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이 선배 예언자들과 같다는 것으로 증명을 했지만 하나냐는 선배 예언자들의 예언으로 증명될 수 없고 성취된 다음이 되어서야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0-11절은 화가 난 하나냐가 예레메야의 목에 있는 멍에를 꺾고는 그 꺾어버린 멍에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벗겨서 이와 같이 꺾어 버리겠다고 예언을 했다. 참으로 통쾌한 예언이고 예레미야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설교와 도 같다. 이에 모든 백성들은 환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되게 전달하는 사람들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말을 전하는 사람이 더 인기가 있는 법이다. 예레미야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12-14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냐가 나무 멍에를 꺾은 것은 결국 나무 멍에 대신 쇠로 멍에를 만든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씌운 멍에는 결국 하나님께서 만들어 씌운 멍에이기 때문에 아무도 꺾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주었는데 심지어는 들짐승도 그에게 넘겨 주었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권위를 꺾을 자는 아무도 없고 오직 그 위에는 하나님 뿐인 것이다.
15-17에서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을 한 하나냐를 저주하는 말을 전한다. 15절에서 보내지 않았다고 했는데 보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salah"이고 16절에서 거역했다는 말은 "sara"
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지(salah)" 않았는데 "보냈다(salah)" 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반역(sara)" 한 것이라는 것이다. 반역이라는 말은 신명기 13:5절에서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라는 말에서 배반한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따라서 하나냐는 하나님께 대해서 반역을 일으켰으니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예레미야나 백성들이 죽이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죽게 하셨다. 하나냐의 죽음으로 예레미야의 누명은 벗겨지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될 것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자신들의 잘못은 그냥 덮어주고 자신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는 말씀들에 열광한다. 그런 말씀들은 마치 나무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과 같이 통쾌하고 기분 좋아지는 것이기에 그런 말씀들에 은혜를 받았다며 골라 듣는다.
그런 말씀을 골라 읽고 골라 전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따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있는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영적 권위가 높다고 평가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이 진짜로 높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하나냐가 멍에를 꺾은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한 것과도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목회자 건 평신도 건 상관없이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모든 사람들을 마구 심판하고 정죄한다.
만약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서 전한다면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욕을 먹게 된다. 20:18절에 나온 것처럼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를 받는가!" 라고 말하게 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4:13절에서 세상의 쓰레기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다고 했는데 바울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왕 노릇하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공부하고 깊이 깨달았다면 그 말씀을 전하면서 예레미야처럼 바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쓰레기요 음식 찌꺼기 취급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쓰레기 취급 받은 경험이 없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나중에 하나냐처럼 자신이 하나님이 된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존경을 받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으로 자신을 정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