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3:1-8 양 떼를 죽이고 흩어버린 목자들을 심판하시고 "여호와의 정의"로 다스릴 새로운 왕을 세우셔서 남은 자들을 모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신다.
하: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의 정의로 다스리시는 진짜 왕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서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모으는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인장 반지를 빼 버리시고 유다 왕실을 항아리처럼 던져 깨 버리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양떼를 죽이고 흩어버린 목자들을 심판하시고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 하나 돋아나게 해서 참 목자를 세운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양떼를 죽이고 흩어버린 목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내용이다. 2절은 1절에서 말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백성들을 돌보는 목자들이란 유다의 왕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모으고 양떼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양 떼를 흩을 뿐만 아니라 몰아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목자의 주된 임무인 양 떼를 돌보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돌본다는 말은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펴본다는 뜻이다. 이제 너희 악한 행실을 벌한다고 했는데 원어는 돌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너희가 양 떼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너희 목자들의 악한 행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신다는 뜻이다. 유다의 왕들이 백성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이제 유다의 왕들의 그런 악행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3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남은 양 떼들을 모으시겠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양 떼들 중에 남은 양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모으셔서 다시 그들의 목장으로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다시 모아오셔서 돌보시면 그들이 번성하여 수가 많아진다고 했다.
남은 자란 흩어진 모든 유다 백성들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우상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실한 자들을 모아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이러한 "남은 자"는 "남 은자(여자 이름)" 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그 중에서 쓸 만한 자들은 건져 내신 자들이다. 남은 자들이 번성해지면 또다시 나쁜 목자들로 인해 타락한다. 그러면 또 다시 심판하시고 그 중에 또 남은 자들을 모아서 다시 번성하게 하신 것이다.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줄 목자를 세우신다고 했다. 원어에는 "참다운" 이라는 말은 없다. 새번역 번역자가 NLT의 "responsible shepherds" 라는 번역을 따라 그렇게 삽입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가 돌보게 되면 남은 양 떼들은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떠는 일이 없을 것이며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양떼가 흩어지는 첫 단계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무서워 떤다고 했는데 절망한다는 뜻이다. 두려움이 더 커지면 공포에 휩싸여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아무 데로나 도망가기 때문에 잃어버리게 되는 단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가 세워지게 되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5절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목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 하나 돋아나게 할 그날이 오고 있다" 라고 했다. 다윗 왕가는 잘려진 나무와 같이 잘려졌다. 밑동만 남아서 완전히 죽은 줄 알았는데 그 죽은 나무 밑동에서 의로운 가지가 아니라 싹이 돋아 나는 것이다. 마치 나무 자르는 사람이 우리 교회 무화과 나무를 실수로 잘라 버렸는데 다시 싹이 돋아 나는 것과도 같다. 다윗의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서 왕이 될 것인데 그 왕은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공평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현명한 재판을 하는 것이고 정의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스리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6절은 그 왕이 다스리는 때가 오면 남왕국 유다는 구원을 받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라고 부를 것이라 했다. 구원이라는 말은 5절 끝부분의 정의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주님께서 의로운 재판관이 되셔서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구원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원어에 담긴 말놀이를 볼 수 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은 한국어로 발음하기 좋도록 쓴 것이고 원어는 "쩨드키야"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우리말의 시옷과 지읏의 중간 쯤 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다. 이는 정의 라는 뜻의 "쩨데크"와 하나님을 뜻하는 "야"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그 뜻은 "여호와가 정의이시다" 라는 뜻이다. 시드기야의 이름은 "여호와가 정의이시다" 인데 사실 시드기야는 전혀 여호와의 정의로 다스리지 않았다. 이제 이러한 다윗 왕가는 시드기야에서 끊어지고 그 잘린 밑동에서 새 왕이 나는데 그 사람이 진짜로 "여호와가 우리의 정의이시다" 된다는 뜻이다.
7절은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지금 오고 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여호와의 정의로 다스릴 왕이 온다는 것이다. 이 왕은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이다. 그 왕이 오게 되면 다시는 그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8절은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 가서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제는 새로운 출애굽이 이루어질 것인데 그 날에 흩어진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출애굽의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고향에서 살 것이라고 했다.
이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뜻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시대를 예언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여호와의 정의로 다스릴 왕은 잘려 나간 다윗 왕가의 죽은 나무 밑동에서 나온다고 했다. 멸망한 다윗 왕가의 후손의 가문인 요셉의 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시고 계신 시대이다. 지금은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분 앞에 모이기를 기다리시는 은혜의 때이다.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분 앞에 모이는 자들이 남은 자들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어리석은 자들처럼 자신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면 안된다. 듣기 싫어 귀를 막고 싶은 참된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 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