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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2:20-23

Dawn Word

예레미야 22:20-23

양다리 걸친 예루살렘에게 해산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하실 것이다

토기장이의 물레와 그릇 · 예레미야 18장

2019. 5. 1.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2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22:20-23 예루살렘이 의지하던 연인들을 망하게 하시고 예루살렘도 해산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하: 수치와 멸시를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인: 하나님 대신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던 예루살렘

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형제 자매들을 섬기며 살자.

이전 말씀은 불의와 불법으로 백성들을 착취하던 여호야김과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보던 요아스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의 친구가 되라고 했다. 이제 여호야김을 따르며 함께 악행을 하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이라는 여인으로 비유하며 심판을 알린다.

20절은 예루살렘이라는 여인에게 레바논 산에 올라가서 통곡하라고 했다. 레바논 산은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 밖에 있는 산맥이다. 레바논의 산들은 우리나라의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들이 즐비하다. 또 바산 평야는 평야가 아니라 높은 산 꼭대기가 평평한 곳이다. 높은 곳은 6500 ft 가 넘고 전체 평균 높이가 3300 ft(약 1000m)정도 된다. 그곳에 올라가서 목소리를 높이라는 것이다. 또 아바림 산은 예루살렘 남동쪽 사해 건너편에 있는 모압 땅이다. 아바림 산맥은 모세에게 올라가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고 한 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느보산이다(민 27:12, 신 32:39).

동맹국들이란 연인들이란 뜻이다. 예루살렘이라는 여인의 연인들 중 대표가 이집트이다. 하나님 대신 주변의 강한 나라들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보호를 받으며 살았는데 이제 그들이 멸망했다는 것이다. 이 세 군데의 산들은 이스라엘 주변의 가장 높은 산들이다. 모세의 때에는 희망을 품고 약속의 땅들을 바라 보았는데 이젠 멸망의 슬픔과 절망에 휩싸여 바라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믿고 의지하던 듬직한 남자들도 이젠 다 죽은 것이다.

21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게 평안할 때부터 경고를 했는데 듣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평안할 때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그 초기부터 그렇게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 수도는 헤브론에 있었는데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부터 이다. 그 때부터 멸망할 때까지 계속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22절 "너의 목자들은 모두 바람에 휩쓸려 가고"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바람이 목자가 되어 모든 너의 목자들을 몰고 갈 것이다" 라는 뜻이다. 목자란 예루살렘에 살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너의 동맹국 백성" 이란 20절의 "동맹국" 이란 말과 똑같이 "연인들" 이란 뜻이다. 예루살렘이라는 여인의 연인들이 모두 다 잡혀간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온갖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은 수치와 멸시를 당한다고 했다. 예루살렘을 여인으로 비유한다면 벌거 벗겨진 채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는 장면이다.

23절은 "네가 지금은 레바논 산 위에 터를 잡고 사는 듯 하고 백향목 나무 위에 보금자리를 깃들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라고 했다. 레바논 산은 이스라엘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최고 높은 곳 꼭대기에 사는 것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아주 크고 높은 백향목에 둥지를 튼 새와도 같다는 것이다. 최고 높고 귀한 귀부인이 높은 곳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다.

23절 뒷부분은 이와는 반대의 그림이 나온다.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 같은 아픔이 너에게 덮쳐 오면 너의 신음이 땅을 뒤흔들 것이다" 라고 했다. 이제는 고귀한 귀부인의 모습이 아니라 해산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명품 옷에 명품 백을 들고 수십억 하는 귀금속 장신구들을 단 여인이었는데 이제 모든 것 장신구 다 빼고 산모복을 입고 고통 중에 신음하는 여인과도 같이 된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을 그토록 고귀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초기부터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이방 나라를 의지했던 것이다. 마치 13살 딸이 불량배 조폭들의 애인이 되어 그들에게 돈을 얻어 사치하고 낭비하며 그들과 잠자리 하고 다니는 모습과도 같다. 그렇게 시작한 음란함은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계속된 것이다. 그런 예루살렘을 참고 또 참아 주시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돌보시며 예언자들을 보내서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끝까지 듣지 않았다.

이런 예루살렘을 보며 우리는 쉽게 손가락질 하겠지만 사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세상 부귀 영화와 명예를 의지하고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들기 때문이다. 많은 재물이나 큰 권력이나 높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그 앞에 머리를 숙이며 잘 지내보려고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못배우고 멸시 받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보다 아래로 보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가졌고 높은 지위에 있고 최고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해도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 만약 그런 사람들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온 바람난 예루살렘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멸시하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쌍히 여기고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듯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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