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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2:13-19

Dawn Word

예레미야 22:13-19

하나님의 친구가 되라

토기장이의 물레와 그릇 · 예레미야 18장

2019. 4. 30.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2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22:13-19 불의와 불법으로 백성들을 착취하던 여호야김과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보던 요아스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의 친구가 되라.

하: 친구가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

인: 하나님과 백성들의 친구였던 요아스와 하나님과 백성들의 원수였던 여호야김

나: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의 친구로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자.

이전 말씀은 죽은 왕을 위해 슬퍼하지 말고 잡혀간 왕을 위해 슬퍼하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여호야김 왕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예언이 이어진다. 여호야김은 살룸(여호아하스)왕 다음 왕이다.

13절은 전형적인 폭군의 모습이다. 예레미야는 공정한 재판(불의) 현명한 재판(불법)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해서 여호야김을 책망한다. 불의란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동족을 고용한다는 말과 짝을 이룬다. 동족이란 친구란 뜻이다. 친구를 불러 강제로 일하게 시킨다는 것이다. 친구라면 어려운 사정을 잘 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옳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친구를 노예처럼 부린다는 것이다. 불법이란 현명한 재판으로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의 반대인데 친구를 불러 일을 시키고 품삯을 주지 않는 것과 짝을 이룬다.

14절은 그렇게 불법과 불의로 짓는 집에 대한 탐욕을 나타낸 것이다. 먼저 살 집을 넓게 짓는다고 했다. 누각도 크게 만든다고 했다. 누각이란 2층에 있는 방인데 살 집이라기 보다는 먹고 마시고 즐기며 놀 방이다. 창문도 만들어 단다는 말은 벽을 더 넓게 찢어 창문을 확대한다는 뜻이다. 백향목은 당시 건축 재료 중에 가장 비싼 최고급 재료이다. 뭐든지 크게 크게 크게 하고 최고급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15절은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경쟁한다고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라고 했다. 원어에는 더 좋은 왕이 아니고 그냥 왕이다. 경쟁한다고 했으니 새번역은 "더 좋은 왕" 이라는 말을 넣어서 의미를 살린 것이다. 그러나 원어 그대로 "네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라고 해야 한다. 여호야김은 왕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15절 뒷부분은 "네 아버지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라고 했다. 요시야는 여호야김의 아버지이고 여호하아스는 여호야김의 형이다. 법과 정의를 실천하던 훌륭한 왕이던 아버지 요시야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배우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었다. 요시야 때에는 형통했다는 것이다. 여호야김 너도 그렇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 형통한다는 것이다. 왕은 순종하면 되는 것이지 집을 크게 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6절은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요시야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서 처리해 주면서 잘 살지 않았느냐? 라고 했다. 요시야는 공정한 재판과 현명한 재판으로 잘 다스렸는데 여호야김 너는 반대로 불의와 불법으로 다스리고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강제노동만 시켰다는 것이다.

16절에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며 사는 것이 여호와를 헤아려서" 라는 말이다. 여호와를 헤아린다는 말은 여호와를 안다는 뜻이다. 이는 여호와와 친밀한 친구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과 친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요아스는 여호와를 잘 알고 깊이 이해하며 그 뜻대로 행하며 산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친한 친구였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친구였기에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과도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17절은 이러한 요아스와는 반대로 여호야김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것과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에만 쏠려 있다" 라고 했다. 먼저 불의한 이익을 탐한다는 말은 너의 눈과 심장이 불의한 이익에 가 있다 라는 뜻이다. 불의한 이익을 원하는 탐욕스러운 마음이다. 그 다음 단계는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자신이 그 재산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단계로 빼앗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억압하여 강제로 일을 시키고 폭력까지 써서 때리고 고문하며 일을 시키는 모습이다. 다 짜내고 더 짜낼 것이 없는데도 비틀어 짜서 피 한방울까지 다 짜내는 포악한 모습이다.

18절은 이러한 여호야김을 두고 "아무도 여호야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 남자들도 슬프다 하지 않고 여자들도 애석하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과 비교한 것이다. 여호야김에게는 함께 울어줄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또 "슬픕니다, 임금님! 슬픕니다, 폐하!" 라고 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여호야김이 죽어도 슬퍼할 친구가 없을 뿐 아니라 함께 슬퍼할 신하들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19절은 "사람들은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으로 멀리 내 던지고 마치 나귀처럼 묻어 버릴 것이다" 라고 했다. 예레미야 36:30절에도 "그의 시체는 무더운 낮에도 추운 밤에도 바깥에 버려져 뒹굴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실제로 그렇게 버려진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는 뜻일 것이다. 다윗 왕가의 왕으로서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묻힌다는 표현일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비교되는 것은 불의와 불법으로 친구인 백성들을 착취하던 여호야김과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정하고 현명한 재판으로 돌보던 백성들의 좋은 친구였던 그 아버지 요아스의 모습이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전혀 모르던 악인이었고 요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스리던 하나님의 친구였고 백성들의 친구였다.

핵심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원수까지도 인내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잘 알기만 한다면 남의 깊은 정보를 캐내어 흉보고 까발리는 악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행하며 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친구라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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