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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0:14-18

Dawn Word

예레미야 20:14-18

자신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예레미야

2019. 4. 24.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0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20:14-18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날들과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을 저주했고 모두가 재난과 전쟁으로 죽어서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신의 고통을 표현했다.

하: 고난 속에서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인: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예레미야

나: 아무리 힘들어도 예레미야 같지는 않다.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속은 것을 알고 전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강제로 전하게 하셨기에 예레미야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찬양하자고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중에 있기에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슬픔을 노래했다. 이 슬픔은 20:1-6절에 나온 바스훌 때문일 것이다.

14절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날이 복된 날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가문을 이어간다는 것이기에 복된 날이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저주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있다. 15절은 아들이 태어났다고 아버지에게 알려준 사람을 저주하고 있다. 출생 소식을 전하지 말아야 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은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죄였기에 그 죄는 피하려고 이렇게 날과 소식 전해진 것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16절은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해 준 그 남자가 어떻게 저주를 받기를 원하는지 말한 것이다. "주님께서 사정없이 뒤엎어 놓으신 그 성읍들" 이란 창세기 19:24-28절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킨다. 어째서 아무 죄도 없는 그 사람이 이렇게도 심한 저주를 받으라고 하는가? 이는 그 사람 개인을 향한 저주가 아니다. 아침에는 울부짖는 고통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울부짖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낮에는 적군이 쳐들어오는 함성을 들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이 나서 그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 다 죽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17절은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죽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영원히 모태 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라고 했다. 이는 16절의 자연재해와 전쟁의 그림이 계속 연결된다. 어머니가 그러한 재난으로 인해 죽었어야 했다는 것을 이렇게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아이가 모태에서 죽는다면 유산을 하는 것이지 모태 안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이가 모태에서 죽어 영원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경우는 어머니가 아이를 임신한 채 죽은 경우 뿐이다.

18절은 불행하게도 자신이 그 모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자신은 고난과 슬픔을 보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이 그 모태에서 나와서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이러한 수모 속에서 보내는지 한탄한 것이다. 이제 자신의 출생 자체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태에서 나오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슬픔의 언어들은 예레미야가 얼마나 고통과 수치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고통과 수치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은 것이 놀랍다. 그렇기 때문에 7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속아서 당한 것이고 나중에는 알았는데도 하나님의 힘에 눌려 할 수 없이 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당장 죽었을 것이기에 할 수 없이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채 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뜻과 달라도 순종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말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무리 큰 고통 중에 있더라도 우리 주님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 전하고 제자 삼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레미야와 같은 반대를 받고 예레미야와 같은 멸시와 천대를 받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도록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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