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10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던 예루살렘은 칼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완전히 망할 것이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불탈 것이며 항복하여 비참하게 포로로 끌려가는 것 말고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
하: 완전히 멸하시는 하나님
인: 전과 같은 기적을 요구하는 시드기야 왕
나: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자. 오직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치고 삶으로 보여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하자.
이전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날들과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을 저주했고 모두가 재난과 전쟁으로 죽어서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신의 고통을 표현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그렇게 예레미야를 고통스럽게 하던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멸망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으로 연결이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항복하는 사람만 살 것이라며 완전한 멸망을 예고한다.
1절은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 제사장을 예레미야에게 보냈다.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20:1절에 나온 임멜의 아들 바스훌과는 다른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전할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었다.
2절에서 왕이 보낸 사람들은 "제발 우리가 멸망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때 쓰는 말이다. 시드기야 왕의 마음에 기대하고 있던 기적은 기원전 701년에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물리쳐 주셨던 일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는 것이다.
그러자 3절에서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4-7절은 왕에게 전하라는 내용들이다. 4절은 바벨론 왕 갈대아 군대를 향해 싸울 준비를 하는 무기를 자신들에게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 무기들을 다 모아 도성 한 가운데에 모아 놓겠다는 것이다.
5절은 놀랍게도 여호와께서 직접 예루살렘을 공격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손과 강한 팔을 뻗치셔서 직접 치시겠다는 것이다. 본래 하나님의 손과 팔은 대적들을 공격하시던 팔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공격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세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 분노란 콧김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분노의 콧김을 내쉬기 시작하신 것이다. 둘째 노여움이란 열이라는 뜻이다. 그 콧김이 계속되어 열을 많이 받은 상태이다. 셋째 울화란 대단한 진노라는 뜻이다. 대단한 진노란 터지기 직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한결 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으셨는데 이젠 더 이상 참으실 수 없게 되신 것이다.
6-7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어떻게 치실 것인지 말씀하신 내용이다. 6절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 치신다는 것이다. 먼저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 몰살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치시는 재앙의 3종 세트가 나온다. 그것은 전염병과 칼과 굶주림이다. 이 세가지에서 살아 남은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넘겨준다는 것이다. 보통은 이렇게 포로가 되면 전쟁은 끝이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포로를 조금도 아끼지 않고 무자비하게 칼로 쳐 죽인다는 것이다.
8-10절은 이제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내용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놓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길을 선택하면 살 것이고 거부하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 생명의 길은 9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가 바빌론 군대에게 항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다. 반대로 사망의 길은 계속 성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칼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다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을 빠져나가 항복하는 사람들은 바빌론 군대의 전리품의 신세로 목숨만은 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길도 그 말의 뜻처럼 축복의 길은 아닌 것이다. 포로가 되어 벌거벗겨지고 매를 맞으며 사슬에 묶여 끌려가겠지만 목숨만은 겨우 건진다는 뜻이다.
10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게 복을 내리려고 마주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내리려고 마주 서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대로 칼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치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노려보시며 서 있다는 뜻이다. 이제 예루살렘은 바빌론 왕에게 넘어가고 그는 이 성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항복하면 다시 살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항복해도 그 성은 통째로 다 태워버린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항복한 자들 만이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끌려갈 뿐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경고하실 때 회개하고 돌아서야 했다. 마지막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한 것도 회개가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전처럼 기적을 보여 달라고 뻔뻔하게 말한 것 뿐이다. 오늘날도 세상 것을 의지하면서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회개란 그동안 의지하던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돌아서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우리도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면 안된다.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면서도 말로만 하나님을 찾으면 안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몸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길이다. 오늘날 이 두가지를 섞어 놓으면서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사탕발림으로 속이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은 듣기 좋은 축복의 말과 자신들의 신비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믿는 자들을 자신들의 권위 아래에 묶어 두려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우면 머리만 커진다며 자신들이 나누어 주는 성경만 받으라고 한다. 자신들을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며 겁을 주어 자신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는 마치 사이비 이단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시편 43:3절에서도 "주님의 빛과 진리를 나에게 보여주시어 나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장막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성경 말씀 그 자체이지 신비한 권위를 지닌 거짓 예언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 절대로 양다리는 없다. 그런 양다리의 운명은 오늘 말씀에 나온 예루살렘의 사람들처럼 완전히 망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