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7-13 하나님께 속은 것을 알고 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강제로 전하게 하셨기에 예레미야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당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찬양하자고 외쳤다.
하: 강제로 전하게 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
나: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자. 온 세상이 다 나를 대적하며 듣기 싫다고 할지라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거짓 예언을 한 바스훌과 그의 예언을 듣고 박수를 친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게 된다고 했다. 3절에서는 주님께서는 거짓 예언자인 제사장 바스훌을 "마골-밋사빕"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0절에서도 "마골-밋사빕" 이 나온다. 예레미야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레미야를 노리고 있기에 온 천지 사방이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대적들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안 하겠다는 자신을 억지로 시켜서 계속 예언을 하게 하셨기에 사방에 두려움 천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한 용사이신 주님이 건져 주실 것을 믿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7절은 "주님이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라고 했다. 속인다는 말은 출애굽기 22:16절에서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이라는 말에서 "꾀어 동침하다" 는 말과 같은 말이다. 또 사사기 14:15절에서 "네 남편을 꾀어" 라는 말에서 "꾀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유혹하여 동침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유혹하셨고 자신은 완전하게 속아 유혹을 당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남녀관계에 비유해서 한 말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친밀하게 다가오셔서 말씀해 주시고 예언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자신이 예언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올 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몸을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나님은 완전 제비족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하나님께 유혹을 당해 완전히 탈탈 다 털려 알거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습니다" 라는 말이다. 같은 말이 신명기 22:25절에서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이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강간하였다는 말은 원어에서 "강제로 잡고 함께 누웠다(NASB: the man forces her and lies with her)"는 뜻인데 이를 강간이라는 한 단어로 번역한 것이다. 강제로 붙잡았다는 말이 바로 주님께서 나보다 강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사무엘하 13:11절에서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라는 말에서 붙잡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7절 앞부분에서 유혹한다는 말과 연결하면 처음에는 유혹해서 동침했는데 더 이상 속지 않자 나중에는 강제로 강간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감정을 성적인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힘든 처지를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니 정말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예언을 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 때문에 정말 좋았을 것이다. 자신이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모두가 다 회개하여 유다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줄 알고 기뻐 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가 다 자신을 대적하고 죽이려고 하니 제비족 하나님께 완전히 속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안 하겠다고 불평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강제로 계속 가서 예언을 하라고 시키셨다는 것이다. 자신은 안하고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하나님의 팔의 힘이 자신보다 강해서 꼼짝 없이 하나님께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하기 싫은데도 할 수 없이 계속 예언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팔에 붙잡혀 억지로 예언을 한 것을 강간 당했다는 표현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마치 유혹에 넘어가 잠자리를 하고 또 강제로 동침하게 된 처녀처럼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전하면 모두가 회개하고 자신과 한 마음이 되어 모두가 하나님만 경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고 자신을 조롱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온종일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한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날에도 모든 이라는 말이 붙어있고 사람들이라는 말에도 모든 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날마다 라기 보다는 하루 모든 시간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조롱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8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7절과 연결된다. 7절에서 자신이 왜 제비족 하나님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했는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말할 때마다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적대적인 태도로 위협하는 분위기이다. 그 외친 내용은 "폭력과 파멸" 이다. 언약을 어긴 것 때문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한다고만 선포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주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은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된다고 했다.
치욕이라는 말은 사무엘하 13:13절에서 다말이 암논에게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라고 말한 것에서 수치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사야 47:3절에서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라는 말에서 부끄러운 것이 보인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이는 간음한 여자가 잡혀서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낸 채 모욕을 당하는 모습과도 같은 장면이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성적인 언어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9절은 7절 뒷부분에서 강제로 당했다는 말을 설명한 부분이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라고 결심하고 외쳐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 소욕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까지 타 들어 가니 나는 견디지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원어는 심장이 마치 뼛속에 갇혀서 타는 불처럼 타 들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심장 속에서 타 들어가는 불은 아무 데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그 안에서만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꼼짝도 못하고 전하게 된 것이 강간을 당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10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고 했다. 예레미야가 들은 것은 "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있다" 라는 말은 원어에서 "마골-밋사빕"이다.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는 뜻이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라고 했다. 바스훌과 같은 거짓 예언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장면이다.
문제는 자신과 늘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던 친한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예레미야가 넘어지기만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예레미야를 이해해주고 예레미야의 편이 되어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이라는 말은 7절의 유혹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예레미야가 자신들의 유혹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강제로 덮치고 그에게 보복하자고 한다. 예레미야가 자신들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들과 야합하게 되면 그걸로 빌미로 꼼짝도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11-12절은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이다. 11절은 "주님은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 라고 했다. 힘센 용사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용사" 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기만 해도 모두 싸워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다는 것이다. 이제 예레미야의 대적들은 실패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큰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유다 사람들에게 큰 수치를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는 말이다. 지금은 자신이 수치를 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너희들이 영원한 수치를 당할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용사이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12절은 이러한 강한 용사이신 하나님을 "만군의 주님" 이라고 부르며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신다고 했다. 어떻게 시험하시는가 하면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 이라고 했다. 이는 원어에서 "콩팥과 심장을 보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콩팥에는 의인이 하나님만 사랑하는 감정이 담겨있다. 심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담겨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다 보시고 검사하신다는 것이다.
이어서 "내가 그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콩팥과 심장을 다 보셨으니 이제 자신이 아뢴 억울한 사정을 들으시고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다. 이제 전사이신 하나님은 모든 대적들을 굴복시켜 꿇어앉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제 그들 앞에 재판관으로 앉아 계신다. 예레미야는 법정에 서서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아뢰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것을 자신이 보게 해달라는 것이다.
13절은 갑자기 "주님께 노래하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라는 말로 분위기가 바뀐다. 주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할렐루 엣 여호와" 인데 여호와를 칭찬한다 또는 자랑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자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억압받는 사람들" 이란 원어에서는 "가난한 사람"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마치 광야에서 아무 것도 없이 떠돌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는 물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하나님 밖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말도 이와 같은 뜻이다. 그런 사람들을 악인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았고 하나님께 당했다던 예레미야가 "마골-밉사빕" 이 되었는데도 예레미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마친다. 예레미야를 위협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사라졌는가? 아니다. 예레미야는 여전히 "마골-밉사빕"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센 용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신을 구해주실 것을 믿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을 믿으며 찬양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기쁜 일이 있어서 기도 응답을 받아서 찬양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의 찬양이 아니다. 그런 찬양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은 것 같이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강제로 당한 것 같이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믿는 일 때문에 진짜 힘들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