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5:5-9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고 또 참으시며 기다리셨지만 계속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예루살렘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모든 자식들이 적군의 칼에 죽는 것을 지켜보는 어미와 같게 하신다.
하: 하나님을 버린 백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나: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항상 주님만 사랑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내 백성 처녀 딸이 비참하게 뭉개 져서 죽어가는 것은 므낫세의 혼합주의 때문이며 경고의 때가 지나면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버렸다고 하겠지만 오늘 말씀은 "너를 불쌍히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네가 바로 나를 버린 자다" 라는 말로 이어간다.
5절은 세개의 질문으로 되어있다. 첫째 질문은 "예루살렘아, 누가 너를 불쌍히 여기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아끼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나와 있지 않지만 답은 분명히 "그렇게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다. 둘째 질문은 "누가 너를 생각하여 위로의 눈물을 흘리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이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통곡하며 운다는 뜻이다. 역시 답은 "그렇게 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것이다. 셋째 질문은 "누가 네 안부라도 물으려고 들러 보겠느냐?" 라는 것이다. 이는 무리들을 따라 가다가 '어, 우리 딸 어디 갔지?' 하고 무리에서 빠져 나와 찾아 본다는 뜻이다. 역시 답은 "그렇게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것이다.
그렇게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널 책임지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도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네가 사라져도 돌아서서 찾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6절은 그런데 왜 그런 하나님을 버렸느냐 는 것이다. 그렇게도 널 사랑하는 하나님을 버린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예루살렘 너다 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모습은 두 단계로 되어있다. 원어에는 "떠나갔다"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떠나갔다는 말은 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 표시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단계이다. 그 다음 단계는 "등을 돌리고" 라는 말이다. 이는 계속 뒷걸음질 쳐서 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 보면서 표시 안 나게 멀어지려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뻗었고 멸망시킨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이젠 "너를 불쌍히 여기기도 지쳤다" 라는 것이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셨는데 끝도 없이 하시다 보니 이젠 지쳐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7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타작마당의 키질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키질은 그러나 키를 들고 곡식을 까부르는 모습이 아니다. 곡식과 낱알이 섞여 있는 것을 나무로 된 포크로 퍼서 공중에 흩어 뿌리는 모습이다. 그러면 낱알만 아래로 떨어지고 쭉정이와 지푸라기들은 다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문마다 지키고 서서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다 포크로 퍼서 하늘로 던지신다. 그런데 알곡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 날아가 버리는 그림이다.
어떻게 포크로 퍼서 바람에 날려 버리시는가? 자식을 잃고 망할 것이다 라는 말의 주어는 하나님이다. 새번역은 심판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것처럼 되어있지만 원어는 "내가 그 자식들을 끊겠다" 라는 뜻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자식들을 잃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망한다는 말은 "내가 그들을 멸하겠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죽게 하신 자식들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데 다음에는 그 어미들까지 다 멸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치도록 계속 제자리에 데려다 놓았는데도 끝없이 반역하고 그릇된 길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예루살렘의 책임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과부들을 바닷가의 모래보다도 더 많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패러디처럼 들린다. 남자들은 다 죽는다는 것이다. 또 젊은이들의 어미들을 친다고 했다. 먼저 남자들이 다 죽은 것은 7절에서 자식들을 먼저 끊겠다고 하신 말씀과 짝을 이룬다. 그 다음에 그들을 멸한다는 말은 청년들의 어미인 여자들을 다 죽게 하신다는 말과 짝을 이룬다. 그래서 모두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떨게 하겠다고 하신다.
9절은 이러한 심판의 때에 살아 남아있는 한 여인의 비참함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 여인은 아들을 일곱이나 두었는데 모조리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기절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여인에게는 아직 해가 떠 있는 낮인 데도 이미 해가 완전히 진 밤이라는 것이다. "그 여인은 비천한 신세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은 수치를 당하고 또 욕을 잔뜩 먹으며 멸시를 당한다는 뜻이다. 자식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거지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남아있는 자식들은 원수들의 칼에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이 여인은 그것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전쟁은 끝이 나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에 적군들이 성 내를 샅샅이 뒤지며 살아 남아있는 남자들을 찾아내어 그 어미 보는 앞에서 죽이는 모습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한다 하면서도 뒷걸음질 치며 세상 부귀와 명예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죄가 없어서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인내의 기간이 지나면 오늘 말씀에 나타난 것과 같은 심판이 찾아 올 것이다. 자식 일곱 둔 여인의 자식이 전쟁터에서 다 죽고 겨우 하나 살아서 도망쳐 와서 품에 안겨 고통스러워 하는데 적군들이 와서 그 아들을 어미 보는 앞에서 찔러 죽이는 것과 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게 뭔데? 말로만 믿는다고 떠드는 것?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다. 말로만 믿는다고 떠들면서 사실은 세상 쾌락을 따르고 사는 것은 예레미야에서 계속해서 간음하는 여인이라고 비유했었다. 오늘날 구원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로만 가르쳐서 모두가 간음하며 살도록 방조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한다. 우리의 길이 비록 힘들더라도 그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진짜 믿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