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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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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 14:1-16

거짓 예언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

2019. 3. 30.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14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14:1-16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전쟁과 기근으로 멸하시는 이유는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예언과 그 거짓 예언을 따라 하나님께 범죄한 그 백성들의 죄 때문이라 하셨다.

하: 거짓 예언자들과 그 추종자들 모두를 멸하시는 하나님

나: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거짓된 위로와 평화의 말을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치마를 머리까지 올려 수치를 드러내시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언덕과 들판에서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 했다. 그것도 한없이 참아 주시는 하나님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공격해 오는 전쟁을 통해 심판하신다고 하셨다면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기근으로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다른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공식으로 시작을 하는데 오늘 말씀 1절은 독특하다. 원어를 직역하면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예레미야에게 향한 가뭄에 관한 말씀"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직접 백성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셨다는 뜻이다.

2절은 음악에서 짧게 끊어 치는 스타카토와도 같다. 직역하면 이렇다. "유다가 운다. 그 문들이 기력을 잃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쓰러져 운다. 예루살렘의 울부짖는 소리가 올라온다." 이는 마치 허리케인의 현장에 파견나간 리포터가 눈으로 본 것을 순서대로 짧게 보고하는 모습과도 같다.

제일 먼저 유다가 운다고 했다. 여기서 운다는 말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경우에 주로 쓰는 말이다. 가뭄으로 기근이 계속되자 자녀들이 굶주리다가 죽어가고 있었기에 울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굶어 죽은 자녀들을 품에 안고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둘째 그 문들이 기력을 잃었다는 말에서 문이란 성문들을 말한다. 이 문들은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한 두 사람만이 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성 전체가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울고 있는 모습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는지 울다 울다 지쳐서 기력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셋째 땅바닥에 쓰러져 운다는 말은 땅바닥에서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울다 울다 지쳐서 땅바닥에 쓰러졌고 날이 어두워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어두워졌다는 말은 슬퍼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일 수 있기에 새번역은 탄식이라 했고 개역은 애통이라 했다. 하지만 이 단어의 본래 문자적인 의미를 보면 훨씬 더 생생하게 연결이 된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울부짖음이 올라온다 라고 했다. 예루살렘은 유다의 지도자들이 사는 곳이기에 여간해서는 가뭄으로 울부짖을 일이 없다. 이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까지도 울부짖게 되었는데 그 울부짖는 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귀한 왕과 그 신하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품위를 내던지고 통곡하며 울부짖고 있는데 그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3절은 예루살렘의 귀족들이 종들을 보내 물을 구해오라고 하지만 우물에도 물이 없어 종들은 빈그릇만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종들이 애태우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말은 종들이 수치를 당하고 당황하고 머리를 가린다는 뜻이다. 주인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4절은 이제 리포터의 카메라는 귀족의 종들에게서 농부들에게로 옮겨진다.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갈라진다는 말은 땅이 마치 내동댕이쳐진 질그릇처럼 깨져버렸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농부가 당황해서 머리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5절은 들녘의 암사슴도 풀이 없어서 갓 낳은 새끼를 버린다고 했다. 6절은 들 나귀도 아무것도 없는 높은 언덕에 서서 여우처럼 헐떡인다고 했다. 풀이 없어 눈이 흐려진다고 했다. 사람 먹을 곡식은 말할 것도 없고 들녘의 바위 틈에 나는 작은 풀 조차도 하나도 없는 것이다.

7-9절은 예레미야가 자신을 백성들과 동일시하면서 기도하는 내용이다. 7절에는 백성들의 죄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다. 먼저 죄악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책망을 받는 그림이다. 이는 죄악의 초기단계이다. 그렇게 죄를 지었을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때문에 선처해 달라는 것이다. 두번째 말한 수없이 반역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등지고 돌아서서 가버리는 그림이다. 그렇게 하기를 수도없이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죄를 지었다는 말은 목표물을 놓쳤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향해 드려야 할 찬양을 엉뚱한 우상들에게 드리는 모습이다. 찬양과 경배의 목표를 놓쳐버린 것이다.

8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두가지로 부른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했다. 이제 모두가 다 죽을 위기에 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둘째 구원자라는 말은 메시야 라는 말인데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과 같이 군사적인 지도자라는 뜻이다. 환난에서 구해주는 전쟁 영웅이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하룻밤 묵으러 들른 행인처럼 행하시냐는 것이다.

9절은 8절의 희망과 구원자라는 말을 가지고 말 바꾸어서 하는 말이다. "어찌하여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되시고" 라는 말은 하나님도 희망을 잃고 포기한 사람처럼 되셨느냐는 뜻이다. 또 구해줄 힘을 잃은 용사처럼 되었다는 말도 8절에 나온 전쟁 영웅이 낙심하여 좌절해 있는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들 한 가운데 계신다는 말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진을 치시고 그 백성들은 그 둘레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터에서 지휘관으로 그 군대의 한 가운데에 진을 치고 지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또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유라고 부르는데 만약 버리고 떠나 버리시면 주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10절은 주님의 대답이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두고 말씀하신 것은 첫째 이리저리 방황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똑바로 걷지 않고 제멋대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곳에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한다는 말은 잠시도 하나님 앞에 서 있지를 못하고 정신 사납게 제멋대로 뛰어 다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제 그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들의 죄악을 징벌하겠다고 하셨다.

11-12절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한 백성을 고소하시는 내용이다. 11절은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완전히 그 백성들을 버리셨다는 뜻이다. 12절은 그들이 금식을 해도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번제물과 곡식제물을 드려도 그 제사들을 받지도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완전히 다 삼켜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앞부분에서는 바빌론을 통해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셨고 또 오늘 말씀에서는 기근으로 멸망시키겠다고 하신 것이다.

13절은 예레미야의 탄원이다. 거짓 예언자들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근이 오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주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화를 주신다" 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예언 때문에 백성들이 그렇게 된 것이니 백성들은 용서해 달라는 뜻이다.

14절은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말로 위로와 평화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을 보내지도 않았고 명하지도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보낸다와 명한다와 말한다는 그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다. 본래 예언자를 불러서 말씀하시고 명령을 내리신 뒤에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명령하신 적도 없고 아예 말을 섞은 적도 없다고 하시며 저들의 거짓말의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은 세가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신다. 첫째 거짓된 환상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지도 않은 환상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신 것처럼 속인 것이다. 둘째 허황된 점괘란 귀신의 힘을 빌어 점치는 것을 뜻한다. 셋째 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이다. 오늘날 세상 탐욕을 따라 범죄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평화의 말씀만 전하는 사람들의 말도 역시 이러한 세가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15절은 이러한 거짓 예언자들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않으셨는데도 하나님 이름으로 "이 땅에는 전쟁과 기근이 없을 것이다" 라고 거짓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짓 예언자들이 먼저 전쟁의 칼에 죽게 할 것이고 기근에 굶어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16절은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을 들은 이 백성들도 기근과 전쟁에 시달리다가 죽어서 예루살렘 거리에 내던져질 것이고 묻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아들 딸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을 한 예언자들이 잘못이니 나머지는 살려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만 잘못이 아니라 거짓 예언을 들은 백성들도 잘못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도 동일하게 잘못이다. 그들 만이라도 유대의 지도자였던 남편과 아버지를 설득했어야 했다. 아니면 그들 만이라도 남편과 아버지를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에게 재앙을 쏟아 부어 주신다고 했다. 원어는 그들의 사악함을 그들에게 쏟아 붓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저들이 받는 것은 자신들의 죄악에 빠져 죽는 것이다.

오늘날도 멸망의 핵심은 거짓된 예언자들이다. 하나님 뜻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짓된 예언자들은 오늘날도 있다. 세상 탐욕을 따라 성공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계속 그렇게 살도록 부추긴다. 그런 사람들에게 솜사탕 같은 말만 해서 그들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판하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들도 역시 동일하게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같은 참된 예언자들의 말도 역시 들려 주셨기 때문이다. 저들이 듣기 싫어해서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거짓 예언자들의 핑계를 댈 수 없다. 듣기 싫은 말씀이라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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