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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11:18-12:6

Dawn Word

예레미야 11:18-12:6

음모를 알려주시고 피하게 하시면서 다가올 고난을 견디라 하시는 하나님

2019. 3. 21.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11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11:18-12:6 고향 친척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음모를 알려주셨고 이러한 고난은 작은 것이며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다가올 텐데 위장된 친절로 다가올 것이니 믿지 말라.

하: 음모를 알려주시고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서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한결 같은 사랑을 끝내고 이제 그 백성들을 불살라 버리시고 부러뜨리시겠다고 하셨다. 이제 갑자기 예레미야에게 예언을 하지 말라며 죽이려는 음모가 이어진다. 이는 11:9절과 11:15에서 유다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민다는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대적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음모를 폭로하는 예언을 하자 자신들의 음모를 감추기 위해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18절은 주님께서 알려주셔서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원어는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때에 또한 주님께서 그들의 모든 행실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말로 알려주시고 그 다음에는 또한 저들의 행동들을 보여 주셔서 알게 하셨다는 뜻이다. NIV나 NLT는 "plot"

이라는 단어를 삽입했지만 원어에는 없다. 아직 음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19절은 예레미야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양과 같았다고 했다. 이는 말없이 순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원어에는 바로 이어지는 말이 나를 해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줄을 전혀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끌려 갔다는 것이다. 저들의 말은 "저 나무를 열매가 달린 그대로 찍어 버리자" 라는 말이다. 이는 결혼하지 않은 예레미야가 아직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아직 자녀가 없는 예레미야를 죽여버리면 그의 이름이 그 자손들에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유로 한 말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때까지 저들의 음모를 전혀 알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20절은 그 음모를 알려주신 분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것이다. 그 분은 의로운 재판관이라 하셨다. 올바른 재판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자신의 결백함을 아시고 대적들의 악함을 심판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 하나님을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라 했다. 생각과 마음이란 콩팥과 심장이라는 뜻이다. 콩팥이란 감정과 사랑이 머무는 곳이고 심장이란 지식과 생각들이 머무는 것이다. 모든 감정과 모든 생각들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다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원수 갚아 주시는 것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알면서도 직접 원수 갚지 않고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긴 것이다.

21-23절은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아나돗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드디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놀랍게도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고향 마을인 아나돗 사람들이다. 고향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아라" 라고 하면서 예언하면 죽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하자 친척들인 아나돗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힌다면서 명예살인을 계획한 것이다.

22절은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벌하신다고 했다. 그들의 장정들은 칼에 찔려 죽는다는 것이다. 이는 적군이 침입해서 싸울 만한 남자들은 다 적군들의 칼에 다 죽는다는 뜻이다. 또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그 아비들이 죽은 관계로 모두 다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23절은 그 결과 그들 중에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나돗의 남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하면 벌을 내리시는 해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모조리 죽게 되고 나머지는 다 굶어 죽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 예언자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12:1-6절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예언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드린 독백이다. 1절에서 예레미야는 먼저 주님은 언제나 옳으셨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주님께 불평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항상 주님의 판결이 옳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공정성 문제 한가지를 묻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되기만 하냐는 것이다.

2절은 그 이유를 담고 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을 심으셨으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열매를 맺으나" 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주님께서 심으셨기에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죄를 고발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입에만 가까지 있고 그들의 콩팥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거룩하게 섬기는데 실제로 저들의 사랑은 다른 데에 있다는 뜻이다.

3절은 그러나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아신다는 것이다. 또 예레미야를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음을 다 검사 해보시고 아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심장이다. 즉 예레미야의 생각을 다 검사해 보고 아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생각을 다 아신다면 하나님께 대한 아나돗 사람들의 감정과 사랑도 다 아실 것 아니냐는 뜻이다. 저들이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틀림없이 다 알고 계실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심판하시지 않으시냐는 것이다. 그러니 저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정하셔서 도살해 주시라는 것이다.

4절은 갑자기 땅이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는지 묻는다. 또 들녘의 모든 풀들이 말라 죽어야 하는지 묻는다. 이는 악인들이 번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땅과 그 땅에 있는 풀 같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나님께 고발을 한 것이다. 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사악함 때문에 짐승과 새도 씨가 마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들녘의 모든 풀들이 다 말랐기에 짐승과 새들도 먹을 것이 없어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탄식하며 불평을 하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이 5-6절이다. 5절에서 하나님은 갑자기 "네가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고 질문하신다. 사람과 달리기는 걸어 다니는 적의 보병들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말과 달리기는 말을 탄 적의 기병들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하는 모습이다. 사람과 달리기를 하는 것은 아나돗 사람들과 싸우는 것에 비유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말과 달리기를 하는 것은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싸우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과 달리는 것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이라고 해석한다. 이렇게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을 때는 문맥을 봐야 한다.

또 그 다음에 이어지는 비유도 앞에서와 똑같이 작은 일과 큰 일을 대조한다. 먼저 "네가 조용한 땅에서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이라는 말은 "평화로운 안전한 땅에서도 넘어진다면" 이라는 뜻이다. 이와 대조되는 더 큰 일은 "요단강의 창일한 물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는 것이다. 우기가 되어 요단강 물이 불어나서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갈 때에는 어떻게 그 속에서 똑바로 서겠느냐 는 것이다. 이렇게 연결되는 비유를 보면 바빌론의 침공을 우기의 요단강의 강물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아나돗 사람들의 핍박과 그 보다 더 큰 핍박을 이 두가지 비유로 비유한 것인데 두가지 비유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 현재 겪는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뜻이다.

6절의 "네 친척, 네 집안 식구가 너를 배신하고"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네 형제들과 네 아버지의 집들" 이란 뜻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아나돗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그들이 네 뒤에서 고함을 치며 욕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달리기이고 평화로운 땅에서 사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들이 너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도 너는 그들을 믿지 말아라" 라는 말은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닥쳐 올 텐데 그런 고난은 그렇게 죽이려 하고 거친 말로 고함을 치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정한 말로 대하며 예레미야에 대해 호감을 가진 것처럼 다가오겠지만 그것은 더 큰 고난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모스 7:16절에도 보면 사람들은 아모스에게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 하지 말라고 했다. 또 미가 2:6절에서도 "이 모든 재앙을 두고 예언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망신 시키실 리가 없다" 라고 했다. 따라서 이러한 고난은 예레미야만 겪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사람들에게 전한다면 우리도 예레미야와 똑같이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들이기에 어떻게 든 잘 키워 보시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시다. 만약 그러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한결 같은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따르기 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예수님도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시면서도 끝까지 참으시며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 뜻대로 산다면 고난을 당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할 것이다. 그럴 때에 라도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길 기다리며 우리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직접 대적하고 욕하는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은 친절한 말로 다가오며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직접 욕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인내하고 견디면서 거짓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속으면 안된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과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친절을 베풀어야 하지만 그들을 믿고 의지하라는 뜻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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