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0:17-25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멀리 던지셔서 크게 다치고 그 거처들도 다 무너지게 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주님의 진노대로 벌을 주지 마시고 백성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만 해달라고 간구했다.
하: 그 백성을 내 던지시는 하나님
인: 진노가 아닌 자비로 벌을 줄여주셔서 백성이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예레미야
나: 예레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성도님들을 품고 기도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힘쓰자.
이전 말씀에서 우상은 헛된 나무 도막일 뿐이고 금방 있다가 사라질 안개와 같은 것이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영원하시다고 했다. 이제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모두 멸망하고 나서 남은 자들은 먼 나라로 잡혀갈 것을 말하고 있다.
17절은 예루살렘 멸망 직전 바빌로니아 군대에 포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597 B.C.). 이제 살아 남은 자들은 곧 포로로 끌려 갈 것이니 짐을 꾸리라고 했다. 앗시리아인들이 남긴 부조를 보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이 나온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필요한 간단한 개인 소지품을 머리에 이고 갔을 것이다.
18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 그렇게 짐을 싸야 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역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강조하면서 똑바로 잘 보라는 말로 경고한다. "이 땅에 사는 백성을 먼 곳으로 내 던지고" 라고 했다. 먼 곳에 내던진다는 말은 다윗이 썼던 물매로 돌을 내 던지듯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을 멀리 내던지신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고통을 느끼게 해서 스스로 죄를 발견하게 하려는 것이다.
19-21절은 예레미야의 탄식이다. 19절은 "우리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라고 했는데 원어는 개역개정처럼 내가 심히 다쳤다는 뜻이다. 실제로 예레미야가 심하게 다쳤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목격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19절 뒷부분 "이는 진정한 고난이고 내가 반드시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는 예레미야 혼자서 중얼거린 것이다.
20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집들이 파괴된 것을 장막(tent)에 비유했다. 장막은 부서졌고 장막을 매던 모든 끈들은 다 끊어졌다. 뿐만 아니라 내 아들들도 모두 떠나가고 남아있지 않아서 장막을 칠 때 함께 잡아 줄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커튼을 달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살 곳이 파괴된 것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죽었든지 아니면 잡혀갔든지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21절은 이렇게 된 것이 백성의 목자들이 미련하여 주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백성의 목자란 왕과 제사장들 같은 지도자들을 뜻한다. 이들이 미련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미련하여 이러한 재난을 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성이 모두 흩어졌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그들의 모든 양 떼가 흩어졌다는 뜻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목자들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그 양떼인 백성들이 다 흩어져 버린 것이다.
22절은 들려오는 소식들이다. 이는 소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다. 그 소문은 유다 백성이 바빌로니아 군대들에게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는지에 관한 소문들이었을 것이다. 먼저 소문이 들려온 뒤 그 다음에는 "보아라, 이미 이르렀다" 라고 말한다. 유다의 성읍들을 무너뜨려서 여우 떼의 소굴로 만들어 놓으려고 진군하는 소리라고 말한다. 고고학적인 발굴도 기원전 6세기에 파괴된 것으로 증명이 되었고 대부분 복구되지 않았고 다시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랜 세월 후에 일부만 복구되고 일부 지역에만 사람들이 다시 와서 살았을 뿐이다.
23절은 예레미야의 기도이다. 23절은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고 한다. 원어는 "사람의 길이 자기 안에 있지 않다" 라는 뜻이다. 사람의 길이 자기 손아귀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원어는 앞부분과 마찬가지로 역시 길을 걷는 그림이다. 길을 걷는 사람은 그 발걸음을 제대로 바르게 놓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 갈 길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마음대로 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24절은 이러한 잘못을 깨달았으니 "형벌로 주님의 백성을 채찍질 하여 주시되 주님의 진노대로 하지 마시고 너그럽게 다스려 주십시오" 라고 했다. 원어는 백성이라는 말이 없고 1인칭 단수이다. 예레미야 자신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물론 그 의미는 새번역처럼 그 백성들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백성들과 동일시하여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자비하게 때리지 마시고 부모가 잘못한 자녀를 가르치려고 매로 때리듯 때려 달라는 뜻이다. 자신이 잘못을 깨달을 정도로만 벌을 달라고 예레미야는 간구하는 것이다. 심하게 매를 때리시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백성을 자신과 동일시 하여 간구하고 있다.
25절은 "주님의 진노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백성에게 쏟으십시오" 라고 했다. 원어는 이방 백성이 아니라 단순히 "나라들에게" 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방 나라들만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쏟으십시오 라고 했다. 그들이 야곱 자손을 삼켜버렸다고 했다. 그 거처 까지도 황무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물론 이는 이방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을 삼킨 것을 뜻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 백성들은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그 백성을 구해달라고 차마 하지 못하고 자신을 구해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자신을 그 백성과 하나로 묶어서 간구한 것이다.
우리도 예레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도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와 하나로 묶어서 간구해야 한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길 기도한다. 모두가 다 예레미야처럼 사람들을 품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