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17-22 주님께서는 곡하는 여인을 불러서 장례식을 치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의 모든 남자들이 다 살륙을 당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도 이제는 장송곡 뿐이다.
하: 완전히 끝났으니 이젠 장례식을 치르라시는 하나님
인: 완전히 망해버린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
나: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거룩을 행하며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자.
이전 말씀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완전히 망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버리고 바알 신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참으시며 경고하신 말씀들을 다 버리고 끝까지 제 갈 길로 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완전히 망해버린 예루살렘과 유다를 위해 장송곡을 부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17절 맨 앞에는 원어에 보면 "그러므로" 라는 말이 있다. 15-16절에서 완전히 망하게 하시고 전멸시킬 때까지 칼이 쫓게 하실 것이므로 라는 뜻이다. 이어서 "나 만군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라는 말은 온 세상 모든 군대의 대장이신 여호와라는 말이다. 모든 군대의 대장 되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되게 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아무도 거역하거나 그 명령을 번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명령어들은 먼저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은 오감을 통해 감지하라는 뜻이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완전히 망한 것을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판단한다면 예루살렘과 유다는 완전히 망했으니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 수 없다. 그래서 이어서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 들이고" 라고 했다. 곡하는 여인들이란 전문적으로 곡을 해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다. 그런 여인들을 불러서 오게 하라는 것이다. 장송곡을 부를 여인들이란 원어에서는 "현명한 여인들을 오게 하라" 는 뜻이다. 곡 하는 여인들 중에 아주 능숙하게 잘하는 여인들을 오게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여인들은 조문객들이 함께 슬퍼하며 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주는 여성들이다. 그래서18절에서는 "서둘러 와서 우리를 도와서 조가를 불러다오" 라고 한 것이다. 원어는 서둘러 오게 시키라는 뜻이다. 또 이어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고 우리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쏟아지게 하여다오" 라고 한 것이다. 이는 정말 심각한 비극이니 모두 함께 따라 울 수 있도록 가르쳐 주게 하라는 것이다.
19절은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전문적인 애곡사들과 함께 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서?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서 그렇게 곡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죽었는가? 아니다. 그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다 죽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망하였으며 이토록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가?" 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완전히 다 파괴되었기에 이젠 그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20절은 여인들과 딸들이 등장한다. 남편과 아들들은 모두 다 죽었기 때문이다. 고대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는 남자들은 모조리 다 죽이는 법이다. 그래야 다시는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겨두는 이유는 종으로 부리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과부가 된 여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딸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 주님의 말씀은 회복의 말씀이나 회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애도하는 법이고 장송곡이다. 혹시나 하고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이제 다 끝났으니 장송곡을 부르라는 것이다.
21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우리의 창문으로 기어올라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왕궁에 까지 들어왔다는 말은 성벽의 높은 망대를 뜻하는 말이다. 적군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와 높은 망대를 점령했고 창문을 통해서도 들어오는 모습이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점령당하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것이다.
그 다음 순서는 무자비한 살륙이다. 그래서 "거리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사정없이 죽어가고" 라고 했는데 "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을 잘라버린다" 라는 뜻이다. 적군들이 길거리 있는 아이들을 칼로 사정없이 잘라 반도막을 내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은 넓은 광장에서 그렇게 적군의 칼에 잘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22절은 이제 상황이 끝난 모습이다. 다 끝난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된다. 그 말씀의 내용은 "사람의 시체가 들판에 거름더미처럼 널려 있다" 는 것이다. 사람이란 남자라는 뜻이다. 남자들만 다 죽이고 여자들은 전리품처럼 잡아다가 팔아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거두어 가지 않은 곡식 단이 들에 널려 있듯이 시체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추수꾼은 밀을 베어 놓은 뒤 한 움큼씩 들판에 내려 놓는 법이다. 그러면 거두는 사람들이 모두 모아 창고에 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베어서 한 움큼씩 줄지어 쌓아 놓은 밀들처럼 시체가 그렇게 줄지어 널려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곡하는 여인들을 불러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말로 시작해서 적군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어린아이 청년 할 것 없이 남자들은 다 죽이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추수꾼들이 베어 놓은 곡식단처럼 풍성하게 널려있는 시체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젠 회개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조차도 이젠 장송곡이다. 다 끝났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오늘 본문에서 완전히 멸망한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하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저들은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발톱의 때만큼도 안 여기던 그렇게 거룩하고 자부심이 강하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저들이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이라 망했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앞으로 심판 날에도 멸망할 자들은 교회 안에 있다. 말로는 하나님을 최고로 열심히 믿는다 하면서 자신의 탐욕을 따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간 자들이다.
우리에게도 한없이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고 또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기회가 지나가면 오늘 본문과 같은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아직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이제는 사람들의 눈가림만 하는 믿음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알몸으로 서 있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짜 거룩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