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2-9 말로만 거룩과 평화를 외치며 실제로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남을 해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이제 버린 자식 취급하신다.
하: 버린 자식 취급하시는 하나님
인: 거짓 평화를 외치며 속이고 비방하며 남을 해치던 사람들
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자. 사람들을 속이듯 하나님도 속일 수 있는 것처럼 외식하는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자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며 하나님만 원망하던 딸이 중상을 입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통곡을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죽은 딸 과도 같은 백성들을 붙들고 통곡하다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장송곡을 넋두리처럼 부른 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러한 백성들을 완전히 버린 자식 취급하신다는 것이다.
2절에서 이 백성들을 버리고 예레미야는 사막에 있는 여행자의 쉼터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사막의 쉼터란 사막에 멋진 호텔이 아니라 작은 그늘일 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이는 화려한 예루살렘과 대조가 된다. 더러운 죄로 가득한 화려한 도시를 떠나서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그늘에서 쉬고 싶다는 것이다. 정말 구제불능인 더러운 간음하는 자들과 배신자들 무리인 백성들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것이다.
3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죄를 밝히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먼저 "활을 당기듯 혀를 놀려 거짓을 일삼는다" 라고 했다. 원어는 그들은 그들의 혀를 활처럼 구부린다는 뜻이다. 거짓을 발사하여 남을 죽이려고 활시위를 잔뜩 당긴 것처럼 늘 남을 속이고 죽일 준비를 하고 다닌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진실은 없고 그들의 폭력만이 이 땅에서 판을 친다" 라고 했다. 원어는 "거짓과 진실이 아닌 것만 그 땅에서 강하다" 라는 뜻이다. 그들의 혀의 상태를 말한 다음에는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농작물에 비유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 밭에는 의와 진리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거짓과 진실이 아닌 것만 잡초처럼 강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혀와 마음을 말한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이 이들의 죄의 최고 정점이다. 그 정점은 "그들은 나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제사장과 예언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왕들과 그 신하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은 나를 모른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악의 최고 정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4절에서는3절에서 말했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거짓과 진실이 아닌 마음으로 화살을 쏘아 대는 혀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원어에는 이웃을 조심하고 형제를 신뢰하지 말라는 경고가 먼저 나온다. 이어서 왜냐하면 모든 형제가 사기꾼들이고 모든 이웃이 비방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형제들이 거짓말이라는 화살을 쏘아서 속이고 모든 이웃들은 진실이 아닌 것만 떠들어서 남을 비방하는 화살을 쏜다는 것이다. 입만 열면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기 위한 거짓말만 해대고 함께 앉기만 하면 남의 흉을 보고 비방하는 입방아를 찧는 자들이 바로 정확하게 이런 망할 자들이다.
5절은 모두가 다 그 이웃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당시 예루살렘에는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혀는 거짓말을 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라는 말은 그들은 거짓말을 하도록 그들의 혀를 가르쳤다 라는 뜻이다. 혀만 그렇게 잘못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어서 "죄 짓는 일을 그치려 하지 않는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원어의 의미는 죄를 짓는 일에 지쳐 있다는 뜻이다. 하도 많이 죄를 짓다가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죄를 하도 열심히 지어서 그 죄를 짓는 일 때문에 완전히 지쳐서 이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저들은 죄를 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6절은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을 되풀이 하면서 기만 가운데 살기 때문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는 "속임수의 한 가운데에 집을 짓고 눌러 앉아 살고 있다" 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본 뜻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속임수에 터를 잡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깨소금맛인 남을 비방하고 속이는 것을 통해 쾌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남의 흉을 보거나 비방하거나 속이는 일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머물고 있다면 그런 악한 일을 할 때 불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하나님의 마음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방하고 속이는 일에 아예 터잡고 살면서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주의 말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그러니 모두가 다 들으라는 것이다.
7절은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라는 말로 다시 강조하며 말한다. 하나님께서 중대발표를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중대발표는 "내가 내 백성을 금속 단련하듯 단련하며 시험하여 보겠다" 라는 것이다. 이는 최고로 뜨거운 불에 넣고 다 녹여 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에 순금이나 순은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시험해 보시겠다는 것이다. 이제 최고 뜨거운 불 같은 고난으로 다 녹여버리고 태워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한없이 인내하시며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알리고 경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8절은 하나님께서 검사해 보신 결과일 것이다. 먼저 내 백성의 혀는 독이 묻은 화살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말로 죽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속이는 거짓말만 한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평화를 그 이웃에게 말하지만 마음 속은 숲 속에 숨어 기다리며 죽일 기회만 보는 복병들 과도 같다는 것이다.
9절에서는 "이러한 자들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또 다시 "나 주의 말이다" 라는 말이 들어있다.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이러한 백성에게" 라는 말에서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부를 때 쓰던 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는 것이다. 이제 남의 자식 취급하듯 이러한 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 어떻게 보복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반드시 멸하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유다 백성들의 죄는 거짓으로 거룩한 척 하고 평화를 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말로 남을 죽이고 남을 해치는 행동만 했던 것이 바로 저들의 죄이다. 따라서 오늘날도 교회에 나와 거룩한 척하고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미워하고 흉을 보며 말로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구제 불능의 악인들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버리시고 남의 자식 취급하기 전에 매를 들고 때리며 가르치려고 하실 때 듣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척이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