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8:4-12 하나님은 중상을 입은 자들에게 가짜 치료를 해 주며 거짓된 위로와 평화를 전하는 자들은 모두 다 시체더미 위에 쓰러지게 하실 것이다.
하: 거짓된 지도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인: 거짓된 위로와 평화를 전하며 탐욕을 채우던 유대교 지도자들
나: 진리의 말씀으로 경고하여 거짓된 예배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진정한 예배자가 되게 하자.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거짓 신들을 섬기던 유다의 지도자들의 뼈를 모두 꺼내어 그 신들 앞에 흩어 뿌리신다고 하셨다. 오늘 말씀에서는 회개하지 않고 계속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면서 괜찮다고 긍정적인 말만 전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4절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멸망할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말하라고 하셨다. 그 내용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누구나 떠나가면 돌아오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답은 당연히 다시 일어나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넘어지기도 하고 잠시 떠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5절은 그런데 이 백성 예루살렘은 늘 떠나기면 한다고 했다. 예루살렘 백성이란 유대교 지도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자동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은 고집을 부리며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된 것에 사로잡혀서 라는 말은 속임수를 꼭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기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원어의 5절에는 돌아서서 떠난다는 말이 세번이나 반복되었다. 돌아서서 가고 고집 부리며 계속해서 돌아서서 가버리며 속임수를 꼭 붙잡고 돌아오기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6절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도 옳게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 "내가 이런 일을 하다니!" 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자기들의 그릇된 길로 갔다는 것이다. 5절에서 계속 돌아서서 점점 더 멀리 가는 모습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마치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마들 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뒤로 돌아서지 않고 온 힘 다해 제 갈 길을 달려가는 그림이다. 멸망의 길을 가면서도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7절에서는 강력한 비유를 사용해서 말한다. 모든 철새들도 때를 알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백성들은 주의 법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규란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들을 말한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사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분명히 안다. 기록된 성경의 율법서과 역사서에 다 적혀 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전통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현명하신 재판에 따라 의인과 악인을 분명히 구별하여 재판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8절은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요 주님의 율법이 우리와 함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고 여호와의 율법이 자신들과 늘 함께 있다고 떠든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라는 말은 정신차리고 잘 보라는 뜻이다. 율법학자들의 거짓된 펜이 율법을 거짓말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이 수많은 율법의 해설을 기록해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율법들을 형식적으로 지키게 하는 것들이다. 그런 복잡한 율법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형식적으로 지키며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짜 거룩한 줄 알고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멀리 간 것이다.
9절 앞부분은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공포에 떨며 붙잡혀 갈 것이다" 라고 했다. 지혜 있는 사람이란 율법을 아는 예루살렘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들은 율법학자들이 거짓말로 바꾸어 놓은 율법을 아는 자들이다. 수많은 율법들을 알고 지키면서 가난하고 무식해서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죄인으로 정죄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9절 뒷부분에서는 "그들이 주의 말을 거절하였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다고 하겠느냐?" 그들은 사실 주의 말씀을 참 뜻에는 순종하기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지혜가 그들에게 있다고 하겠느냐 는 것이다.
10절은 그들의 아내를 다른 남자들에게 넘겨준다고 했다. 그들의 밭들도 정복자들이 차지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힘 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모두가 자기 잇속만 채우며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 예언자와 제사장까지도 모두 한결같이 백성을 속였다" 는 것이다. 예언자와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이다.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사기를 쳐서 재산을 모았다는 것이다.
11절에서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라는 말은 "그들은 부러진 내 백성의 딸을 겉만 치료하면서" 라는 뜻이다. 속에서 뼈가 다 부러졌는데도 그 상처에 올리브유만 발라주면서 하는 말이 "괜찮다! 괜찮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원어는 "평화! 평화! 평화가 없을 때" 라는 뜻이다. 뼈는 부러지고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빨간 약만 발라주면서 괜찮아 괜찮아 곧 나을 거야 라고 하는 것이다. 거짓된 말씀으로 거짓된 위로와 평화의 말만 전한다는 뜻이다.
12절은 그렇게 다 부러지고 골병이 든 백성들에게 거짓된 위로와 평화의 말만 전하는 자들에게 한 말이다. 역겨운 일을 하고 부끄러워하기라도 했느냐고 묻는다. 답은 아니라고 한다. 역겨운 일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토할 것 같은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일을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안색조차도 변하지 않을 만큼 가증하고 뻔뻔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져서 시체 더미를 이룰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는 그들이 쓰러진 자들 위에 쓰러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미 쓰러진 시체들이 가득 널려있는 그 위에 쓰러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릴 때 그들이 모두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는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이라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들만 부귀영화를 누리던 자들이다. 유다 백성들 모두가 우상숭배 하면서 골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올바른 말씀으로 경고하며 회개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괜찮다고 빨간 약만 발라주던 자들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착취하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캘리포니아 학파들이 만들어낸 교회성장학에 보면 부정적인 설교를 하지 말라고 한다. 항상 긍정적이고 위로가 되는 말만 전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병자들만 잔뜩 모아 놓고 위로의 말만 전하는 사기꾼들인 것이다. 죽을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수액만 놓아 주고는 돈만 받고 괜찮다고 돌아가라고 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교회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렇게 전하는 사람만 잘못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모두가 다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모두가 다 성경을 갖고 있고 누구나 다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목회자들만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모두가 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멀리 가면서 자기들 탐욕만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한통속이기에 그렇게 거짓을 전하는 자들에게 모여 박수 치며 거짓된 위로에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한다. 무서운 책망과 경고의 말씀도 그대로 받아야 한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고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바른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탐욕 다 내려놓고 하나님 품에 안겨 그 품 안에서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며 진심으로 하나님만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