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7:1-15거짓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면서 우상숭배를 하고 이웃들을 속이고 억압하며 해치던 자들의 성전을 허물고 그들 모두 다 쫓아낼 것이다.
하: 거짓된 예배자들을 멸하시는 하나님
인: 거짓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성전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떠들던 유대교 지도자들
나: 말로만 믿는다고 떠들지 말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
이전 말씀은 풀무불로 녹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두 다 납 찌꺼기들 뿐인 가짜들이고 멀리서 가는 길을 살펴보니 모두 다 고집이 센 반역자들이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거짓 경건을 다 버리고 진짜 경건한 삶을 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말씀이 여호와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왔다는 것이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신 것은 원어에 보면 세단계로 되어 있다. 첫째 성전 문에 서라고 했다. 둘째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그렇게 외치는 말은 셋째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라는 말이다. 누구에게 그렇게 하는가? 여호와께 예배하려고 들어오는 모든 유다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예배한다는 말은 본래 높은 사람 앞에 충성을 맹세하며 엎드린다는 뜻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주로 여호와나 이방신들 앞에 예배한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본래 이 단어가 어떤 그림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만약 높은 사람 앞에 충성을 맹세하며 엎드린다 해도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거짓으로 그렇게 하는 척만 한다면 그것은 반역이다. 기회만 되면 높은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엎드리러 성전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다 사람들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로 여호와께 복종하려는 마음 없이 형식적인 예배만 드린다면 그것은 명백한 반역인 것이다. 이러한 유다 사람들을 이전 말씀에서는 모두 은 도금한 납 찌꺼기 같은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가짜들에게 경고하라는 것이다.
3절은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온 세상 모든 군대를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모두가 다 들으라는 것이다. 들을 내용은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쳐라" 라는 것이다. 모든 생활이란 모든 길들이란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라 하는 길로 가야 하는데 모두가 자신의 탐욕을 따라 엉뚱한 길들로 가고 있으니 발길을 돌려 길의 방향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다. 행실이란 손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다. 그것도 다 바꾸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이 그 약속의 땅에 계속 머물러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4절은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라는 말이세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세번이나 반복한 것은 진짜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속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거짓으로 예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모여 거짓 예배를 드리는 곳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다면 그곳이 언제나 돌아갈 고향 집인 것 과도 같다. 부모님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셨다면 그곳은 더 이상 고향 집이 아닌 것 과도 같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데도 그곳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곳이다.
5-6절은 여러 개의 조건들을 나열한 것이다. 5절은 먼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면 이라는 조건이다. 앞에서 말한 발로 걸어가는 길과 손으로 행하는 모든 행실을 다 고친다면 이라는 조건이다. 그 구체적인 조건은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다. 먼저 말한 것은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행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웃이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과의 관계를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직장 동료들 간에 서로 공정한 판결을 하며 살라는 것이다.
6절은 먼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자신들의 아랫사람으로 보고 무시하고 억누르지 말고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라는 뜻이다. 또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는 약속의 땅에서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씌워 살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손으로 행하는 행실들이고 사람들 과의 관계에서의 죄들이다.
마지막 조건인 스스로를 멸망하게 하는 다른 신들의 뒤를 따라 걷지 않으면 이라는 말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으로 삶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데 우상들을 향해 멸망의 길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이다. 따라서 5-6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고 있으니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7절은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꾼다면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라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 땅과 자손들 모두를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조건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 계명을 어겼기에 이제 그 땅에서 쫓겨나고 그 자손들까지도 멸망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죄를 범할 때 그 땅도 역시 저주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8-11절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내용들이다. 먼저 원어에서 8절은 "조심하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속이는 말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쓸모도 없는 속이는 거짓말은 10절에 나온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지켜야 하나님께서 함께 성전에 거하시면서 지켜 주시는데도 모두가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우리는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9절은 도둑질하고 사람을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고 했다. 이는 십계명에 나온 내용들이다. 하나님께서 이 계명들을 지키면 하나님도 그 백성들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겨 놓고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10절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던 거짓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들을 해 놓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성전에 들어와서 "우리는 안전하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원어는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낚아 채 주셨다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런 역겨운 모든 일들을 또 되풀이 하고 싶어서" 이다.
11절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라고 했다. 도둑들이 숨는 곳이란 말은 원어에서 "강도들의 소굴" 이다. 마가복음 11:17절에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신 것 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똑똑히 다 보셨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악한 일들을 골라 하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으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떠든다. 마치 성전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다고 떠들던 자들 과도도 같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일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12절은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두었던 실로에 있는 내 처소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내가 그곳을 어떻게 하였는지 보아라" 라고 말했다. 실로는 처음 법궤가 있던 곳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던 곳이다. 기원전 1050년경에 블레셋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곳이다. 이 사실은 고고학적 발굴로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예배 장소도 그렇게 완전히 파괴했다면 예루살렘 성전도 역시 완전히 파괴하신다는 것이다.
13-15절은 예루살렘 성전도 실로의 성전과 똑같이 그렇게 파괴하겠다는 경고이다. 13절은 앞에서 말한 이 모든 죄들을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계속 경고의 말씀을 하셨는데도 그 백성들은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불렀을 때 대답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4절은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서 한 것과 똑같이 내 이름으로 불리며 너희가 의지하는 이 성전 곧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에게 준 이 장소에 내가 똑같이 하겠다" 라고 했다. 저들이 그렇게도 의지하던 예루살렘 성전도 실로의 예배 장소와 똑같이 그렇게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15절은 성전 파괴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도 모두 다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친척 에브라임 자손들을 쫓아냈다는 말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을 말한다. 그것과 똑같이 유다 백성들 모두를 하나님 앞에서 멀리 쫓아 내 보낸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레미야 당시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모으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 놓고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속인다. 그곳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헌금 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받는다고 속인다. 칼빈을 내세워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떠든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들의 탐욕을 채운다면 그곳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멸망할 예루살렘 성전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더 이상 성전은 없다.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우리는 그 몸 된 성전이 된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사시면서 우리를 주관하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이라고 했다.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구원의 길이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는 길이다.
절대로 세례나 침례 받고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헌금한다고 해도 자기 탐욕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우리도 역시 예레미야 당시 유대사람들처럼 거짓말쟁이들이고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엎드리면서 반역을 꾀하던 반역자들인 것이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방향과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서 가신 그 길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러한 거룩과 구원은 모두 다 멸망할 거짓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