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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6:22-26

Dawn Word

예레미야 6:22-26

경고하신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토기장이의 물레와 그릇 · 예레미야 18장

2019. 2. 28.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6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6:22-26북쪽에서 큰 나라가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성난 바다처럼 울부짖으며 딸 시온을 치기 위해 달려오고 있으니 외아들을 잃은 어미처럼 울부짖어라.

하: 경고하신 말씀을 실행하시는 하나님

나: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내 생각은 완전히 버리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도록 하자.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길을 가던 백성들에게 가던 길에서 멈추어 서서 잘 살펴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본 뒤에 바른 길로 가라고 하셨다. 귀 포경인 백성들을 배려하셔서 파수꾼들을 세워 주시고 트럼펫까지 불어 주시며 들을 수 있게 하셨다. 그래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길을 가는 백성들은 모두 다 망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한 나라가 떨치고 일어나 무장을 하고 오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원어의 22절은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라고 되어있다. 21절에서 다 함께 멸망한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어떻게 다 함께 멸망하는가? 한 백성이 북녘 땅에서 오고 있다는 것이다. 큰 나라가 떨치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떨친다는 말은 수많은 무리들이 흥분해서 소리치는 모습이다. 물이 큰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 치는 모습을 나타낼 때도 쓰는 말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군대가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는 모습이다.

23절에서는 함성을 지르며 일어난 군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들은 활과 창으로 무장했는데 난폭하고 잔인하다고 했다. 그들은 바다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군마를 타고 달려온다고 했다. 바다처럼 이라는 말은 울부짖는 바다처럼 이라는 뜻이다. 허리케인이 일어나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말을 타고 오는데 전열을 갖춘 전사처럼 온다고 했다. 전사처럼이 아니라 전사로써 온다고 해야 옳은 번역이다. 말을 탄 기병들이 그냥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대형을 갖추고 달려온다는 것이다. 딸 시온을 치러 오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딸 시온이라고 한 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연약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24절은 딸 시온이 그 소식을 듣고 두 팔에 맥이 풀렸다고 했다. 팔에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또 해산의 진통을 하는 여인처럼 불안하여 괴로워한다고 했다. 원어는 불안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라는 뜻이다. 불안에게 사로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적군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만 듣고도 애 낳는 여인처럼 불안에 사로잡혀 있고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25절은 들녘에 나가지도 말고 거리에서 돌아다니지도 말라고 했다. 이는 어디에 가도 위험 뿐이고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들판에 나가 피하려 해도 소용이 없고 도망가려고 길로 나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원수가 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의 사방에 공포가 있을 뿐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새번역 26절은 "나의 딸, 나의 백성아"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내 백성의 딸이란 뜻이다. 그렇게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회개하지도 않기에 이제 심판하시려는 데도 아직도 내 백성의 딸이라고 부르시며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다. 굵은 베 옷을 허리에 두르고 잿더미 속에서 뒹굴어라 라고 했다. 이는 극단적인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또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처럼 통곡하고 슬피 울부짖어라 라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외아들은 가족의 이름을 이어갈 존재이다. 또 그 어미가 노후에 의지하고 살 존재이다. 외아들이 죽었다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외아들을 잃은 어미가 상복을 입고 재에서 뒹굴며 울부짖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이는 회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바로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렇게 통곡해야 하는 이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멸망시키는 자가 우리를 덮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심판은 확정되었다. 더 이상 회개의 기회는 없다. 하나님이 왜 이리도 냉정하고 잔인하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잔인하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지독히도 악한 것이다. 그런 저들의 악함을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27절 이후를 보면 그 백성들의 정체가 나온다. 저들은 아무리 경고하고 회개하라고 해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루살렘을 심판할 적들이 달려오고 있는 중이고 머지않아 덮칠 것이고 더 이상 기회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항상 회개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시라며 제멋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 위해 말로 믿는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은 절대로 잃지 않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은 골라서 하면서도 자신들은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떠든다. 이는 예레미야에 나오는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과 완전히 똑 같은 태도이다.

물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로 믿는다고 떠든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성령님을 그 마음 중심에 모셔서 충만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시기에 절대로 나쁜 짓만 골라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뻔뻔하게 떠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중심에 충만하게 계시기에 죄에 대해 아파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확정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출발시키신 뒤에는 그 심판은 돌이킬 수 없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성령 충만함 받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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