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1-9 하나님은 발정난 미친 말과 같은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을 모두 다 멸하실 것이다.
하: 위선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인: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던 예루살렘 지도자들
나: 위선이 아닌 진짜 거룩을 행하자 이전 말씀은 전쟁의 함성으로 모든 성읍의 사람들이 다 도망갔는데도 예루살렘은 창녀처럼 치장을 하고 기다리다가 해산의 고통 속에서 연인들의 칼에 죽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의인 하나라도 찾는다면 용서하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 부분은 여호와의 말씀과 예레미야의 말과 여호와의 응답의 순서로 되어있다.
1-2절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1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바르게 행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아보라고 제안하신다. 하나라도 찾는다면 용서하시겠다는 것이다. 창세기 18:23-3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용서해 달라고 의인 50명에서 10명까지 줄여가며 하나님과 협상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도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인 소돔보다 예루살렘은 훨씬 더 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의인 한명이라도 찾으면 용서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당시 예루살렘에는 의인이 단 한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2절에서 그 이유를 밝히신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고 주님을 섬긴다" 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고 하신다. 원어에서 이 말은 거짓으로 맹세한다는 뜻이다. 3:8-11절에서 대놓고 음행 하던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것이 거룩한 척하면서 뒤에서 음행 하던 유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욕하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3-6절은 이러한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예레미야가 응답한 내용이다. 3절은 "주님, 주님께서는 몸소 진실을 찾고 계셨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성경과 대부분의 영어번역들은 이 부분을 질문으로 번역했다. "여호와여, 당신의 눈이 진리를 찾고 계시지않았습니까?" 진리란 신실함이나 한결같음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찾는다기 보다는 거짓없이 항상 한결 같은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편을 들지 않고 하나님의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님께서 그들을 때리셨어도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며" 라고 했다. 원어는 주님께서 때리셨는데도 그들은 약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세게 치셨는데도 끄덕도 안 하는 대단한 맷집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이어서 " 주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신 것인 데도 그들은 교훈 받기를 거절합니다" 라고 했다. 이는 "주님께서 끝장내신 것인 데도 저들은 그 훈련을 받아들이길 거절합니다" 라는 뜻이다. 이는 한 대 때리신 것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끝장을 내버리셨는데도 끄덕도 안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얼굴은 바윗돌보다 더 굳게 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합니다" 라고 했다. 저들의 얼굴 표면에만 철판을 깔은 것이 아니라 아예 바위절벽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기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4절은 "나는 이러한 생각도 해보았다" 라는 말로 말을 이어간다. 원어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보았다" 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 이란 원어에서는 단지 "가난한 사람들" 이다. 문맥을 보면 무식한 사람들이란 뜻이기에 의미를 살리기 위해 무식하다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고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곧 무식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일반 서민들은 글을 배울 기회가 없다. 오직 신분이 높고 부자인 사람들에게만 글을 배울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5절은 "부유하고 유식한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야기 해보자" 라고 말한다. 원어는 위대한 사람들에게 간다는 뜻이다. 위대한 사람들이 곧 부유한 사람들이고 유식한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말해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저들은 알아들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길을 알고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도 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을 때 그들은 한결같이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었다는 것이다. 저들은 멍에를 부러뜨리고 결박을 끊어버린 자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매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망아지여야 하는데 제멋대로 날뛰는 미친 망아지들이라는 것이다. 멍에와 결박이란 여호와께 순종하고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뜻하는 말이다. 예루살렘의 위대한 자들도 언약을 깨고 하나님께 반역을 했다는 뜻이다.
6절은 그렇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깬 결과이다. "그러므로 사자가 숲 속에서 뛰쳐 나와서 그들을 물어 뜯을 것이다 사막의 늑대가 그들을 찢어 죽일 것이다. 표범이 성읍마다 엿보고 있으니 성 바깥으로 나오는 자마다 모두 찢겨 죽을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적이 쳐들어와서 모두 다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을 맹수들의 공격에 비유한 것이다. 멍에와 결박을 끊고 밖으로 뛰쳐 나가는 미친 망아지들은 맹수들에게 찢겨 맹수들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죄가 아주 크고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7-9절은 다시 여호와의 응답이다. 7절은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용서하여 줄 수 있겠느냐? 너의 자식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서 신도 아닌 것들을 두고 맹세하여 섬겼다" 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껏 배불리 먹여 놓았더니 그들은 창녀의 집으로 몰려가서 음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몰려갔다는 말은 군대처럼 떼거리로 창녀의 집으로 공격해 들어갔다는 뜻이다. 우상의 신전에 군대처럼 떼거리로 몰려가서 음행을 하는 모습을 군대의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8절은 이러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자녀들이 마치 살지고 정욕이 왕성한 숫말과도 같다는 것이다. 각기 이웃의 아내를 탐내어 울부짖는다는 것이다. 우상의 신전에 가서 우상의 여 제사장들인 신전 창녀들과 음행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서로 이웃의 아내와 음행을 하려고 울부짖는다는 것이다. 창녀들과 음행 하는 것은 당시 율법으로 죽을 죄는 아니다. 그러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은 죽을 죄이다. 저들은 음욕이 불타올라서 죽는다는 것도 두려워하지않는 모습이다.
9절은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라고 질문을 하신다. 주님께서 반드시 벌하신다는 것이다. 또 "이런 백성에게 내가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반드시 보복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레미야 당시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당시 소돔보다 훨씬 악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과 계속해서 협상을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동조하며 심판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이 없는가? 아니다. 이미 예레미야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아무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음행을 하고 있기에 이젠 다 끝났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에서 유다의 죄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거룩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발정난 망아지처럼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는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를 하며 거룩한 척하지만 사실은 이웃의 아내들을 탐내어 울부짖는 고삐를 끊고 멍에를 부러뜨리고 뛰쳐나간 망아지들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이 말씀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하면 안된다. 오늘 말씀에 나온 음행은 인간의 탐욕의 대표선수로 내세워 묘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우리가 갖고 누리길 원하는 모든 탐욕들이 다 이러한 음행인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탐욕을 다 내려놓자.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 그 길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