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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3:1-5

Dawn Word

예레미야 3:1-5

탐욕을 따라 음란하게 살며 하나님을 이용하던 이스라엘

2019. 2. 11.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3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3:1-5 이스라엘은 그렇게 더러운 음행을 범하고도 어려운 일만 생기면 뻔뻔하고 당연하다는 태도로 하나님께 돌아오며 하나님은 항상 금방 진노를 푸시고 용서해 주신다고 한다.

하: 뻔뻔함에 진노하시는 하나님

인: 뻔뻔하게 하나님을 이용하던 이스라엘

나: 더러운 죄인을 깨끗하게 해 주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항상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이전 말씀은 패물을 받고 예복을 입고 서약을 했던 신부같은 이스라엘이 최고수 창녀들의 스승님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음행을 한 이스라엘이 뻔뻔하게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한다고 말한다.

1절은 "한 남자가 그 아내를 이혼한 뒤 그 아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이라는 가정법이다. 그 결과를 새번역은 "그 여자가 본 남편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느냐?" 라고 했다. 하지만 원문은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느냐?" 라는 뜻이다. 당시 이혼을 제기할 수 있던 것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시 사회 통념상 모두가 다 "당연히 다시 갈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렇게 되면 그 땅이 완전히 더러워지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한 번 이혼해서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인과 다시 결혼을 하면 그 여인은 이제 완전히 더러워져서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일어난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더러운 것이다. "그런데 너는 수많은 남자들과 음행을 하고도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려고 하느냐?" 라고 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더러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다시 본래의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경우 절대로 다시 재결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창녀라는 것이다. 새번역은 수많은 남자들과 음행을 했다고 부드럽게 번역했지만 원문은 창녀로써 수많은 남자들과 음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더러운 것이다.

호세아에서는 그런 창녀 고멜을 아내로 삼아 사는 호세아가 나온다. 호세아는 그런 창녀 고멜이 다시 창녀로 되돌아가면 다시 데려다 놓고 또 다시 데려다 놓는 모습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편에서 용서할 수 없는 더러운 죄인을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바로 창녀같이 더러운 이스라엘을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용서하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렇게 창녀로 음행을 하고도 뻔뻔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여자는 절대로 자기 스스로 돌아간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정말 최고로 뻔뻔하고 더러운 여인같은 이스라엘이다.

2절은 "두 눈을 뜨고 저 벌거숭이 언덕들을 바라보아라" 라고 말씀하신다. 벌거숭이 언덕은 우상의 산당이 있던 곳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음행을 하며 우상을 숭배에 참여했기에 그곳 나무들을 완전히 다 베어 산도 벌거숭이가 된 것이다. 또한 우상숭배로 다 짓뭉개놓았기에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음행을 하여 더럽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느냐?" 라고 했다. 아무데도 없이 높은 곳들은 모두 다 더럽혀 놓았다는 것이다.

또 "사막에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물건을 터는 유목민처럼 너는 길거리마다 앉아서 남자들을 기다렸다" 라고 했다. 원어에는 물건을 턴다는 말은 없다. 사막의 유목민처럼 길가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길가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유목민들은 여행하는 대상들을 털던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지나가는 남자들을 털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음행으로 그 땅을 더럽혀 놓았다는 것이다.

3절은 그래서 이른비도 오지 않고 늦은 비도 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이른 비는 10-11월에 오는 비이고 늦은 비는 3-4월에 오는 비이다. 문제는 그런 더러운 창녀같은 이스라엘은 뻔뻔한 얼굴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회개하며 용서를 기다려도 모자랄판이다. 그런데 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어째서 이른비와 늦은 비를 안주시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4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오랜 친구" 라고 한다는 것이다. 오랜 친구란 어릴적부터 친했던 친구라는 뜻이다. 정말 뻔뻔하다는 뜻이다. 4절은 5절과 계속 이어진다. 5절은 "하나님은 끝없이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고 했다. 원어는 "그가 영원히 화를 내시겠느냐? 그가 끝까지 진노하시겠느냐?" 라는 질문이다. 답은 당연히 아니다. 금방 진노를 푸시고 다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들의 뻔뻔함이다. 그것도 아주 더러운 뻔뻔함이다. 그런 뻔뻔함으로 계속해서 온갖 악행을 마음껏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언약이라는 것을 이용했다. 그러나 언약은 쌍방간에 약속을 지켜야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언약을 깨뜨렸는데도 하나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주셨던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마음 놓고 음행을 하면서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용서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마음 놓고 음행을 하다가 필요할 때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믿기만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 하나님과 예수님의 피로 새언약을 맺었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그 언약을 깨지 않으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온갖 더러운 일과 악행들을 일삼는 사람들을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히 헌금하고 예배에 참석하면 교회 밖에서는 아무렇게나 자신의 탐욕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사람들은 정확히 구원파의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이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있으면서도 정통 보수라고 자처한다.

물론 우리가 착해서나 말씀대로 순종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고멜과 같이 세상 쾌락을 따라 우리의 탐욕대로 살았던 자들이다. 우리 편에서 용서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다. 그 큰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절대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주워먹는 것처럼 계속 반복해서 탐욕을 따라 살면서도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떠들면 안된다.

우리는 아무 자격도 없는 죄인이다. 그런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주시고 자녀삼아 주신 것에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면서 이제 어떻게 하나님만 기쁘게 할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내 탐욕을 따라 살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하신다며 뻔뻔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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