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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29-37

Dawn Word

예레미야 2:29-37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

2019. 2. 9.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2:29-37 패물을 받고 예복을 입고 서약을 했던 신부가 최고수 창녀들의 스승님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하: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인: 하나님을 버리고 음란하게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나: 항상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모든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알지도 못하는 우상들을 부끄럽게 섬기며 얼굴은 하나님을 향하고 거룩한 척하지만 저들은 도둑질하다 잡혀 부끄러움 당하는 사람들과도 같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무책임하고 배은망덕하며 음란하게 사는 자들이라고 계속해서 책망하는 내용이다.

29절은 법정에서 재판하는 그림으로 이어진다. "너희가 어떻게 나와 변론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억울하다며 하나님을 고소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죄를 짓고도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억울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마디로 잘라서 "너희 모두가 반역을 했다" 라며 결론적으로 답하셨다. 배신했다는 말은 원어보다 느낌이 약한 번역이다.

30절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매로 저들의 자녀들을 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가 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칼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너희의 예언자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원어는 너희 칼이 너희의 예언자들을 사자처럼 삼켰다 라는 뜻이다. 이는 29절 끝에서 반역을 했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왕의 뜻을 전하는 전령을 죽이는 것은 반역의 신호탄이다.

31절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주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한다. 원어를 보면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가 되었느냐? 아니면 깊은 어두움의 땅이 되었느냐?" 라고 되어있다. 이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니던 길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지났고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운 깊은 골짜기도 지나갔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동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다.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대적의 손에서 지켜 주시고 먹이시던 분이지 광야나 깊은 골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지나온 과거의 환경 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다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32절은 처녀가 어찌 장신구를 잊겠느냐는 것이다. 처녀는 이미 정혼은 했지만 아직 합방은 하지 않은 젊은 신부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에서는 정혼을 하면 그 때부터 결혼 한 것으로 인정했다. 이제 막 결혼 예물을 결혼의 증표로 받은 여인이 어떻게 그 결혼 예물을 잊겠느냐는 것이다. 또 신부가 어찌 결혼식에 입을 예복을 잊겠느냐는 것이다. 예물은 가족끼리 결혼을 선언하는 것이고 예복을 입고 잔치를 하는 것은 모두에게 결혼 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는 신부와도 같이 이제 막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그 언약을 잊느냐는 것이다. 신부와도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래전에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날짜를 셀수도 없다는 것이다. 금방 결혼한 새색시가 바람이 나서 떠나갔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자 마자 바람이 나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했다는 것이다.

33절은 하나님을 떠난 신부가 창녀가 되었다고 말한다. "연애할 남자를 호리는데 능숙하다" 는 말은 "사랑을 찾는 길을 어찌나 잘 준비하는지" 라는 뜻이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쉽게 유혹해서 잠자리를 잘 하는지 경험 많은 창녀들도 와서 배워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은 신랑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많은 풍요와 다산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긴다는 것이다. 그 짓 하는데는 얼마나 능숙한지 노련한 창녀들도 "스승님!" 하며 한수 가르쳐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음란한 창녀들의 스승은 또한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34절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치맛자락에는 죄없는 피가 묻어있다는 것이다. 원어는 "죄 없는 가난한 영혼의 피" 라는 뜻이다. 이어서 "그들이 담을 뚫고 들어오다가 너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라고 했다. 출애굽기 22:2절에 보면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쳤는데 죽었다면 죄가 없다고 했다. 그 도둑은 가족들을 모두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3절에는 낮에는 살인죄가 된다고 했기에 밤에만 그런 것이다. 낮에는 소리치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쳐 죽이는 무서운 창녀의 스승이다.

35절은 그러고도 오리발 내미는 잔혹한 창녀의 스승이 뻔뻔함까지 겸비한 모습이다. 저들은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 음란하고 잔혹하고 뻔뻔한 창녀의 스승은 상대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해서 벌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법정에 세워 고소해서 하나님의 유죄를 증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자료를 받겠다는 심산이다.

36절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다니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지조도 없느냐?" 라고 했다. 원어를 직역하면 "얼마나 많이 계속 흔들어 대고 있느냐? 계속 네 길을 바꾸면서 말이다" 라는 뜻이다. 흔든다는 말은 이사야64:1절에서 산이 흔들린다고 할 때도 쓰인 말이다. 상대를 계속 바꾸어가며 계속 천지가 진동하도록 흔들어대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비유이기에 그 뜻은 그 다음에 나온다. 이제 앗시리아에게 수치를 당했던 것처럼 이집트에서도 수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최고 노련한 창녀들의 스승님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돈도 못받고 얻어맞고 벌거벗겨진 채 길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래서 37절은 "너는 거기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올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사무엘하 13:19절에서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 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원어는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손을 머리 위에 얹는다는 뜻이다. 이는 슬픔을 많은 사람들 앞에 표현하는 행위이다. 다말이 강간을 당하고 나서 그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신부도 역시 그렇게 이방 나라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망신을 당한 후 쫓겨나서 슬퍼하며 손을 머리에 얹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네가 의지하는 것들을 나 주가 버렸으니 그들이 너를 도와 주어도 네가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신부가 의지하던 기둥서방들을 하나님께서도 버렸기에 그들도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너를 도와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들도 망하고 너도 망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암나귀와 암낙타로, 간음하다가 들킨 여자로, 또 오늘 말씀에서는 노련한 창녀의 스승으로 비유했다. 이러한 음란한 성적 이미지는 점점 강해지다가 오늘 말씀에서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우상숭배란 하나님만 사랑하지 않고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 것이다. 이는 마치 패물을 받고 예복을 입고 혼인 서약을 한 신부를 노련한 창녀들이 스승님으로 모시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데는 능숙한 최고수라는 것이다.

음란의 특징은 오리발이다. 해놓고도 끝까지 안했다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친 신자들도 끝까지 안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거룩한 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성공해서 조금만 힘을 갖게 되면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뭉개며 계속 올라가려고 한다. 그렇게 아랫사람들의 피를 밟고 올라서는 사람들이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사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대통령까지 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자가 받는 축복이라고 우긴다. 그렇기에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어 도매금으로 온 국민에게 망신을 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순결이다. 하나님 보시건 보시지 않건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하게 거룩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요일 나눈 시편 32편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다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믿는 자들의 순결이다. 거룩해서 복을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 모든 죄를 다 고백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숨김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순결한 신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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