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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26-28

Dawn Word

예레미야 2:26-28

거룩한 척하면서 사실은 부끄러운 짓을 하던 유대교 지도자들

토기장이의 물레와 그릇 · 예레미야 18장

2019. 2. 8.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장 강해 설교

어제 제가 실수로 28절까지라고 해 놓고는 25절에 끝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6-28절까지 하고 내일은 29-37절까지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26-28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알지도 못하는 우상들을 부끄럽게 섬기며 얼굴은 하나님을 향하고 거룩한 척하지만 저들은 도둑질하다 잡혀 부끄러움 당하는 사람들과도 같다.

하: 외식하는 자들의 수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인: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몰래 음란하게 섬기면서도 거룩한 척 하던 유대의 지도자들

나: 세상 탐욕과 성공을 따라 정신없이 달리는 자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힘 다해 달리는 사람이 되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매인 것을 풀어주었더니 암낙타와 암나귀처럼 정신없이 이방신들만 음란하게 섬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도둑의 비유로 같은 내용을 이어간다.

26절은 "도둑이 붙잡히면 수치를 당하듯이 이스라엘 백성 곧 왕들과 고관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다" 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란 원어에서는 "이스라엘의 집" 이다. 그 집을 대표하는 정치적 지도자 두그룹과 종교적 지도자 두그룹을 도둑들로 비유하고 있다. 도둑이란 몰래 훔치다가 들키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법이다. 전 후 문맥을 연결해 보면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무엘상 20:30절에서 사울은 요나단에게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라고 책망할 때도 수치라는 말을 썼다. 27절에 이어지는 내용도 계속 음란하게 신들을 섬기는 모습이기에 오늘 말씀에서 사용된 그림은 몰래 간음하다 들킨 그림이다.

20-25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두고 발정난 암낙타와 암나귀에 비유했었다. 일반 백성들은 드러내놓고 우상의 신전에 가서 음란하게 우상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백성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하며 하나님만 섬기는 척 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들도 역시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이들은 도둑처럼 몰래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몰래 간음하다가 붙잡혀 수치를 당하는 자들의 모습과도 같다.

27절은 나무를 보고 나의 아버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다산을 상징하는 나무로 깎아 만든 여신 아스다롯을 뜻하는 말이다. 또 돌 기둥은 돌을 다듬어 만든 가나안 사람들의 남신을 뜻한다. 그런데 그 돌로 만든 신에게 "당신이 나를 낳았습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지혜로운 지도자들을 암수도 구별 못하는 바보로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암수 한 쌍의 신들이 음란한 가운데 낳은 자식들이 바로 예레미야 당시의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바보들은 누가 아비인지 누가 어미인지 구별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도둑인 이유가 이어서 설명이 된다. "그들은 나에게 등을 돌리면서도 얼굴은 돌리지 않고 있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오셔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는다" 라고 했다. 몸은 우상들에게 돌려서 우상의 신전에서 몰래 음란한 성행위를 하면서도 얼굴만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보는데서는 하나님만 섬기는 척하며 거룩한 척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음란한 우상숭배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환난을 당하면 일어나셔서 구해달라고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이들은 간음하다가 벌거벗은 채 들킨 사람과도 같은 것이다.

28절은 이러한 신들을 "스스로 만들어 섬긴 신들" 이라고 조롱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사실 누가 아버지이고 어머니인지 구별도 못하는 것이다. 그들보고 일어나라고 하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보고 일어나 구해달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유다의 성읍들 숫자만큼 많은 신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똑 같은 행동들이 반복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던 유럽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도 모두가 다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말로는 하나님을 내세우고 거룩을 찾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삼아버렸다.

우리 자신도 몸은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살면서 얼굴만 하나님께로 돌리고 주여 주여 외치는 사람들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의 재물 사용의 우선순위를 보는 것이다. 우리의 재물 사용의 우선순위가 음주나 도박이나 습관성 약물에 있다면 그것들이 우상이다. 여행이나 명품이나 좋은 차 좋은 집 등에 빠져 있는 것은 그래도 좀 고상한 것 같지만 물질 사용의 우선 순위가 그런데에 있는 사람도 역시 그러한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것 뿐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거리의 철학자들처럼 살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에 정신이 팔려있는가가 그가 섬기는 우상이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얻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유럽의 기독교들이 가르쳤다. 그러한 재물을 얻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야 교회가 웅장하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나 한국의 기독교도 역시 열심히 달리라고 성공하라고 한다. 성공에 관한 책들이 교회의 제자훈련 교재로 쓰인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교회를 성장 세미나의 교재 내용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도 그렇게 누리면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살라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달리기이다. 그것은 발정난 암나귀가 수컷들을 부르기 위한 달리기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것을 들고 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달리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달린다고 거짓말하면 오늘 말씀에 나온 유대교 지도자들과도 같고 간음하다 벌거벗은 채 잡힌 사람들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다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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