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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2:20-25

Dawn Word

예레미야 2:20-25

발정난 암낙타와 암나귀 같은 이스라엘

2019. 2. 7.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2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2:20-2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매인 것을 풀어주었더니 암낙타와 암나귀처럼 정신없이 이방신들만 음란하게 섬겼다.

하: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인: 탐욕에 헐떡이며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

나: 내 욕심은 조금이라도 다 버리고 오직 우리 주님의 명령만 따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힘센 나라들의 신들을 의지하니 종이되고 사자밥이 되어 완전히 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20절은 새번역이나 개역이나 모두 너는 너의 멍에를 부러뜨리고 너를 묶은 줄을 모두 끊어버리면서" 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은 "나는 너의 멍에를 부러뜨리고 너의 묶은 줄을 찢어 버리면서" 라고 되어있다. 영어의 ESV, NSAB, KJV, NLT 등은 모두 히브리어 본문을 따라 "I broke…." 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의 NIV는 개역이나 새번역처럼 "you broke…." 라고 번역했다.

이는 기원전 2세기경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구약성서를 따른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의 동사 끝에 붙어있는 글자(י ) 하나가 붙어있으면 내가 부러뜨렸다가 되고 없어지면 네가 부러뜨렸다가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2세기 히브리 사람들이 네가 부러뜨렸다고 번역했기에 그게 맞다고 보고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21절과 비교해 보면 된다. 21절은 나는 너를 …… 심었는데 너는 …… 바뀌었느냐 라고 했다. 그렇다면 20절도 나는 ..했는데 너는 …했다가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이스라엘의 멍에를 꺾어주시고 묶은 줄도 찢어버리셨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나는 신을 섬기지 않겠다"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신" 이라는 말이 없이 "나는 섬기지 않겠다" 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나무로 된 멍에는 꺾어 주시고 줄은 찢어버리셔서 자유하게 해 주셨는데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 새번역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해방시켜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젠 자기 뜻대로 살 것이라 한 것이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이 한 행동은 "높은 언덕마다 찾아 다니며 음행을 하고 푸른 나무 밑에서마다 너의 몸을 눕히고 음행을 하면서 신들을 섬겼다" 이다. 높은 언덕에 세워놓은 우상의 산당을 찾아다니고 푸른 나무 아래에 있는 우상숭배하는 곳에 가서 음행을 했다는 것이다. "너의 몸을 눕히고 음행을 하면서"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똑바로 누웠다는 뜻이 아니다. 히브리어는 "창녀로서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음란하게 우상숭배를 했다는 비유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실제로 우상의 산당이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을 경배하는 행위로서 음란한 성관계를 한 것이기도 하다.

21절은 20절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최고 순수한 씨로서 아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엉뚱하게도 들포도나무로 바뀌었는지 책망하고 있다. 들포도나무란 원어를 직역하면 이방 포도나무이다.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심으셨는데 이방신을 섬기는 백성이 된 것이다.

20절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셔서 인도하신 것을 소의 멍에를 꺾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2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는 것을 포도나무를 심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성과는 반대로 엉뚱하게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22절은 "네가 잿물로 몸을 씻고 비누로 아무리 몸을 닦아도" 라는 말은 20절의 우상에게 가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음행을 한 뒤의 행동이다. 음란한 우상숭배를 음란한 성관계 후 씻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아무리 씻어도 더럽게 얼룩진 죄악은 하나님 앞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셨고 다 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3절은 "네가 스스로 몸을 더럽히지 않았고 바알 신들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나?" 라고 하신 것이다. 23절은 이스라엘의 음행을 골짜기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발이 빠른 암낙타에 비유했다. 발정이 나서 어쩔 줄 모르며 날뛰는 암낙타와 같이 바알신들을 쫓아다녔다는 것이다. 바알신들이라고 복수로 말한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는 여러 군데의 바알신전이 있었음을 알리는 말이다.

23절은 골짜기에서 짝짓기하는 암낙타에 비유했는데 24절은 이스라엘을 사막에서 짝짓기하는 암나귀에 비유한다. 암낙타는 그래도 조용한 편이다. 암나귀는 발정이 나면 정신없이 사막을 달린다. 숫나귀들에게 발정이 난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러면 숫나귀들은 금방 알아채고 온 힘 다해 쫓아가서 짝짓기를 한다. 그래서 "암내만 나면 헐떡이는 그 짐승, 그 짐승이 발정하면 누가 그것을 가라힐 수 있겠느냐? 그런 암컷을 찾아다니는 수컷은 어느 것이나 힘들이지 않고서 발정기가 된 암컷을 만나게 된다" 라고 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음란하게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리저리 날뛰는 암낙타에 비유하고 정신없이 달려서 발정난 것을 알리는 야생 암나귀에 비유한 것이다. 20절의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앞으로 굽히는 것도 이러한 암낙타나 암나귀의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한 말이다.

25절도 달리는 야생 암나귀의 그림이 이어진다. "맨발로 다니지 말고 너의 목을 돌보아 목타게 다니지 말라고 일렀건만" 이라는 말은 발정이 나서 말발굽도 없이 맨발로 달려다니는 암말의 모습이다. 온 힘 다해 달려서 수컷들을 부르고 있기에 목타게 다니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방신들과 음행을 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 다니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당부에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공연한 말씀이십니다" 라고 했다. 새번역이 너무 젊잔케 번역한 것이다. "쓸데없는 잔소리 하지 마십시오" 라고 퉁명스럽게 내뱉는 소리이다. 이어서 "나는 이방 신들이 좋으니" 라고 했는데 원어는 이방인들이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을 뒤쫓아 걷겠다는 것이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결국 이방신전에서 신을 섬기는 여인들의 뒤를 쫓아다니겠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낙타와 나귀의 그림이다. 낙타나 나귀에 맨 멍에를 꺾고 줄을 끊어버리는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 낙타와 나귀가 짝짓기를 하는 그림으로 이어진다. 그 그림은 암나귀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다니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약속의 땅에 좋은 포도나무로 심어주셨는데 정신없이 이방신전과 음란한 짝짓기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이와 같다. 죄와 사망에 매여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풀어주셨는데도 오늘날 믿는 자들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처럼 서로 자신들이 높다고 주장하며 교회 안에서 권력을 탈취하려고 한다. 세상의 명예를 교회 안으로 들여와 세상 지식으로 리더가 되려고 하고 세상의 부와 권력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 리더가 되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성경 지식과 영적은 은사로 리더가 되려고 한다. 모두가 다 음란하게 날 뛰는 암나귀와도 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그런 못된 가지들 다 잘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면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제자를 삼을지에 집중해야 한다. 나의 탐욕에 한눈을 팔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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