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7-8 .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 일을 하는데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사람들의 태도나 말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역한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외적 방해를 견디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을 견디었으며 그로 인해 겪은 내적 변화를 자랑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한다며 완전 무장을 하고 영광이나 칭찬을 받거나 수치나 비난을 받거나 상관없이 진실하게 사역한다는 내용이다.
7절의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이란 함께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말씀을 증거하시고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변화하게 된 것은 바로 진리의 말씀이 바울의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먼저 진리의 말씀이란 말에서 진리란 복음을 가리킨다. 말씀이라는 말이 선포라는 동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진리의 말씀이란 복음 선포를 가리킨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라는 말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 안에서 라는 뜻이다.
또 이와 짝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라는 말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라는 말은 고린도후서 전체의 핵심 주제인 약함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하나님의 능력이 바울이 행한 기적을 가르치기 보다는 바울의전체 선교 사역의 열매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증명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고린도후서의 주제인 약함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치한다. .
다수는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 선포 뒤에 일어나는 기적이라는 입장을 반대한다. 그러나 복음서를 보면 항상 예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뒤 병자를 고치시거나 기적을 통해 귀로 들은 말씀을 눈으로 보게 하시는 순서로 나온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도 역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칠 때 표적과 기사들이 뒤 따랐다. 신약성경에서 말씀 선포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물론 병을 고치거나 특별한 기적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복음이 선포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는 증거를 주셨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도 역시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직접 체험함으로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이 6절 후반부에서부터 7절 앞부분에 나온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이 네가지는 바울의 내적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들이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네가지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될 수 없다.
7절 뒷부분부터 8절에는 세가지 도구들이 나온다. 이 세가지 도구들은 앞에서 나온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들이다. 그 세가지는 의의 무기, 영광과 수치, 속임과 진실함이다. 의의 무기라는 말을 로마서 6:13절의 불의의 무기와 의의 무기가 함께 나오는 것과 연결하면서 의의 무기란 의로 구성된 무기이고 도덕적 의가 의의 무기라고 말하기도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6절에 나오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이 도덕적 덕목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성령이 그 원천이라는 뜻이기에 이전 문맥의 초점도 성령님의 역사이지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의의 무기라는 말에서 의란 하나님이 주시는 의이고 하나님 자신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의의 무기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무기라는 뜻이다. 의의 무기는 우리가 갖춘 도덕적인 덕목들이 아니다. 이 부분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과 왼손에 있는 의의 무기가 무엇일까? 대부분 오른손에는 공격용 무기인 칼이고 왼손에는 방어용 무기인 방패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이 에베소서 6:16-17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 오른 손은 검이고 왼손은 방패라는 것까지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에베소서와 연결하여 말씀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에서는 그렇게 자세한 비유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6:7절에는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과 의의 무기가 나오고 에베소서 6장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전신갑주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에 연결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고린도후서는 먼저 쓰여진 것이고 에베소서는 바울의 사역 말기에 쓰여진 것이기에 나중에 쓰여진 에베소서로 먼저 쓰여진 고린도후서를 비추어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의 비유는 바울이 시대마다 다르게 썼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에베소서 6장과 연결해 본다면 오른손에 있는 무기는 성령의 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의 도구로 오른 손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왼손에 드는 것은 방패인데 역시 에베소서와 연결한다면 믿음의 방패라고 말할 수 있다. 악한 대적들의 불화살의 공격을 막아내서 불을 끌 수 있다. 말씀과 믿음이 있어야 이단들의 공격에 막아내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
이렇게 무장을 하고 대적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하면 겪게 되는 것이 8절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의의 무기처럼 복음 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복음 전할 때 함께 따라오는 상황들을 말한 것이다. 그렇게 복음을 증거하면 영광과 수치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광이란 좋은 평판을 듣고 명예를 얻는 것이다. 반대로 수치를 당한다는 말은 멸시를 당하고 불명예를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다. 복음을 증거하다 보면 때로는 영광을 받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의 멸시를 통해 수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한 뒤 영광을 받는 것이나 수치를 당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내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광과 수치를 경험하면서 증거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내적인 변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광과 수치를 경험하면서 내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이다. 개역에는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말로 나쁜 평과 좋은 평을 듣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나온 영광과 수치와 비슷한 것처럼 보이다. 차이는 영광과 수치는 말로 받는 것이 아니지만 비난과 칭찬은 말로 받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전한 것에 대해 은혜받고 기뻐하는지 아니면 비웃으며 조롱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난이나 칭찬은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라는 뜻인데 말로 직접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복음 전할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욕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경험함을 통해서 우리는 내적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같으나” 시리즈는 내적 변화의 결과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먼저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다고 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다는 말은 세상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바울을 사기꾼처럼 여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사기꾼 취급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