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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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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6:9-10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한 것을 자랑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11. 4.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6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6:9-10 바울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한 것을 자랑하고 있다.

이전 말씀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 일을 하는데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사람들의 태도나 말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계속 이어지는 같으나 시리즈로 세상 기준에서는 망한 사람이지만 하나님 기준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자랑이다.

9절은 세 쌍의 같으나 시리즈이다. 첫번째 쌍은 이름 없는 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다는 대조이다. 이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부는 세상이나 바울의 반대자들은 바울을 무시하지만 성도들 사이에서는 인정을 받는다는 대조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절대 다수는 바울의 대적자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의 대조로 해석한다. 이름없는 자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다는 말은 사도로서 바울은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적자 들도 바울은 사도도 아니라고 무시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바울은 유명한 자 였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 같으나 살아있다는 말은 사람들이 과거의 대단한 바울은 죽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생을 얻은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실제로 바울이 죽을 위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살게 하셨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의미를 단순히 죽음에서 생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 역사하는 부활 생명을 보여준다고 영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 대조를 시편 118:17절을 배경으로 설명하며 영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는 대조로 본다. 죽은 줄 알았는데 보라 살아있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실제로 돌에 맞아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사건을 말할 것이다.

세번째 쌍은 징벌을 받는 사람같으나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앞의 두가지 대조는 학자들마다 엇갈리지만 세번째 대조는 모두가 다 일치한다. 이는 시편 118:18절이 배경이고 여호와께서 징계하셨지만 죽음에 넘기지는 않았다며 인간의 박해는 하나님의 징계와 훈련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러한 징벌을 고난으로 보지 않고 자신에게 징계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하나님이 바울을 치셔서 징계하신다고 생각하지만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훈련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실제로 수없이 맞고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0절에도 역시 세쌍의 같으나 시리즈가 이어진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는 말은 바울에게는 항상 많은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수많은 비난과 중상모략을 받았다. 유대인들에게 쫓겨났고 항상 죽이려고 쫓아다니기 때문에 세상사람들 보기엔 근심이 가득한 자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항상 기뻐 하라고 편지를 써보낼 만큼 기뻐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근심이 없어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근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끝임없는 기쁨이 항상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한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 보기엔 모든 것을 다 잃고 집도 없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해주어서 부요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난은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가난을 의미하지만 부요하게 한다는 말은 비유적 의미이다. 바울은 실제로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선교사들도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실패자같고 가난한 자들 같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누어주는 원천이므로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뜻이다. 가난한 자가 아무것도 없는 자로 더 강하게 확대되며 전체 역설의 절정을 이룬다. 가난보다 훨씬 강한 것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고 사실 이는 앞에서 말한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을 가졌을 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모두 소유한 사람도 그 소유가 일시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영원히 소유한 것은 장차 받을 영광이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복이다. 이는 일시적인 안전이 아니라 영원한 안전을 가졌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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