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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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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6:1-2

우리를 보고 열매 맺는 삶을 살라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10. 30.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6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6:1-2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의 말을 들을만한 때에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도와주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우리를 보고 열매 맺는 삶을 살라.

이전 말씀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며 우리를 시켜 권고 하시기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을 죄로 만드셔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권면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며 지금이 구원의 때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오늘 말씀 6:1절은 원어에서 “그러면 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로 삼으셨으면 또한 함께 일하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사라면 또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뜻이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사이지만 또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이기에 권면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대사이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이기 때문에 또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소개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소개하면서 그 권위로 권면하는 것이다. 권면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어떤 이들은 만약 불신자들을 가리켰다면 어떤 사람들과 같은 표현을 썼을 것이라며 불신자들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5:20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말은 불신자들에게 한 말이고 여기서는 이미 그 복음을 받은 너희 고린도 교인들에게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계속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다가 갑자기 5:20절에서만 불신자들에게 말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슨 뜻인가? 이는 5:17-19절에 나온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를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미리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에 실패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새로운 존재가 된 완전한 도덕적 결과들을 이해하고 실행하는데 실패하지 말라는 뜻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는 그러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한 말이다. 헛되다는 말은 누가복음 20:10절에서 열매 없이 보냈다고 할 때 쓴 말이다. 바울의 편지들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신이 복음 전하는 일에 수고한 결과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한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살지 않는 것이 헛되이 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13:18-23절과 마가복음 4:14-20에 나온 씨 뿌린 자의 비유에서 결실하지 못한 3가지 씨앗들과도 같은 삶이 헛되이 받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아무런 결실이 없으면 헛되이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17절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도 18절처럼 화해의 직분을 맡지 않고 또 그리스도의 대사노릇을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을 닮아야 하는데 파를 나누고 서로 존경을 받으려고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그 권위만 차지하려 하고 있었디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들은 5:10절에 나온 것처럼 환히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 앞에 환히 드러냈고 고린도 교인들 앞에도 환히 드러냈는데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결실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거룩한 척 포장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도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죽지 않았고 구원받기 전의 자신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감추는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그리스도의 빛을 보여줄 수 없으니 헛되이 은혜를 받은 것이다.

원어에서 2절 앞부분에 왜냐하면 이란 말이 있다. 이는 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하면 이란 말이다. 2절은 그 이유를 말하면서 바울은 이사야 49:8절을 인용한 것이다. 2절에는 때를 나타내는 말이 두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은혜의 때” 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의 날이다.

은혜의 때라는 말은 의역을 한 것이고 원어는 받아들일만한 때라는 뜻이다. 이사야가 한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이스라엘의 남은 신실한 자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받아들일만한 때에 너로부터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 이사야 49:8절에서 너는 분명히 단수이다. 하나님께서 들을만한 때에 하나님의 종의 부르짖음에 듣고 응답하시겠다는 뜻이다. 또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그 간구를 듣고 너를 돕겠다고 했다. 역시 여기서도 단수이다. 이사야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의 간구를 들으시고 종을 돕겠다는 뜻이다. 이사야에 보면 바로 이어서 그 종을 통해서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했다. 그 일차적인 의미는 언약을 따라 땅을 회복하고 그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지만 여기서 하나님을 통해 그 백성과 언약을 맺는다고 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다.

다수는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의 글에 나오는 너라는 하나님의 종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사야에서 너는 단수이고 하나님의 종을 뜻한다. 너의 간구를 들으시고 너를 도울만한 때에 도와서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내용이다. 너를 아예 고린도 교인으로 읽으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원문은 분명히 2인칭 단수이다. 고린도 교인들로 읽는 주석가들은 6:1-2절을 5:11-21의 화복의 사역의 결론으로 해석하여 5장 끝부분과 연결하고 6:3절부터는 사도권 변호의 단락이 시작되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본래 의미는 단수인 종이고 처음 떠올린 적용은 바울 자신이지만 현재 권면의 대상은 고린도 교인들이라고 말하면서도 단수인 "너"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구절은 바울의 경우와 예언자의 경우가 닮아있기 때문에 이 구절이 떠올랐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울은 이 예언자의 말들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적용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바울이 인용한 내용은 분명히 이사야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과 자신의 모습이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전 문맥에 보면 고린도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것이기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적용한 것으로 보는 중간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6:1-2절에 5장과 연결되는 결론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사야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을 인용한 뒤에 이어지는 3-10절을 보면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을 말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의 글을 바울 일행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너는 고린도 교인들일 수 없다. 바울이 자신을 이사야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과 같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위로와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락의 목적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바울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울은 구약을 인용한 뒤 그 의미를 설명하고 적용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든다면 로마서 4:3절에서 아브라함의 칭의를 인용한 뒤 4-12절에서 칭의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갈라디아서 3:16절에서도 인용한 뒤 그 후손은 한 사람 그리스도라고 설명한다. 고린도전서 9:9절에서도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 뒤에 10-15절에서 사역자가 사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길게 설명했다. 고린도후서 4:6절과 13절에서도 인용한 뒤에 이어서 설명을 했다.

6:1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고난을 견디며 열매를 맺으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다. 그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미 바울의 기도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이다. 이는 바울 자신도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미 구원의 날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셔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49:9절을 인용한 뒤 "보라!" 라는 말을 두번이나 반복한 것이다. 보라 라는 말은 단순히 때를 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사야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과 바울 일행이 닮은 것을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바울 자신에 적용하고 이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고난을 견디며 열매 맺는 삶을 살아온 것을 증거한 것이다. 지금이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구원의 시대이고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역 안에서 열매를 맺음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때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거짓으로 은혜 받은 척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헛되이 받는다는 말은 마치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배에 바가지나 두꺼운 헝겊을 넣어 임신한 것처럼 꾸미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을 감추고 자신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서도 실제로 있는 척하는 것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거짓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런 결실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척 가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사야에 나온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과도 같은 바울 일행의 모습을 보고 고난을 견디며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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