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3-4 우리는 어떤 일에도 복음의 걸림돌을 놓지 않아서 우리 사역이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리 자신을 추천하며 오래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난을 겪는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의 말을 들을만한 때에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도와주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 우리를 보고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어떤 일에도 걸림돌을 놓지 않아서 우리 사역이 비판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일꾼 답게 처신한다는 내용이다.
3-10절은 바울 일행 자신들에 관한 자랑이다. 이는 진짜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3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고 1절에 연결된 문장이다. 1절의 권면한다는 말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무도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라는 말은 원래 “어떠한 걸림돌도 놓지 않으면서” 라는 뜻이다. 원어에서 걸림돌이란 단순히 기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라는 뜻인데 복음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뜻이다. 걸림돌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지속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어서 그 목적은 그 사역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흠을 잡다 비난하다는 뜻의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와 고린도후서 8:20절에만 나온다. 이 말의 어원을 그리스 신화의 모모스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흠을 찾고 조롱하는 태도를 의인화한 인물이다.
비난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이는 하나님의 비난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두 동사가 사용된 것을 보면 비난하는 주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비난이 아닌 사람들의 비난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체면이나 명성이 깎일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도적 사역과 복음 선포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이라는 걸림돌을 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이것은 절대로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어려운 조건만 내세워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결국 자신들의 사역이 잘못된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4절은 걸림돌을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한다고 했다. 무슨 일에서나 라는 말은 앞에서 어떠한 것도 않으며서 라는 말의 반대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본을 보이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신들을 칭찬한다는 것이고 자신들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가르치지 않고 자신들을 본보기로 보여주면서 자신들을 칭찬하며 자신들을 보고 따라하도록 처신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추천은 자기 자랑이나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답게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추천한다는 뜻이다.
4절 뒷부분부터 자신들을 칭찬하는 목록들이 길게 이어진다. 걸림돌을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본을 보여주어 도와주려는 것이다. 그 본보기들은 어려운 외적환경을 견뎌내는 것을 자랑하는 것과 내적인 변화를 자랑하는 것들로 되어 있다. 외적인 환경을 자랑하는 말은 3가지씩으로 묶여져 있는 3쌍의 말들로 되어 있다. 이 아홉가지의 제목으로 나온 것이 바로 “많이 참으면서” 이다. 어려운 외적 환경들에 대해 많이 인내한 것을 자랑한 것이다.
첫번째 세가지는 환난과 궁핍과 곤경이다. 이는 바울 선교의 외적 환경을 말한다. 환난이란 전반적인 고난과 압박이라는 뜻이다. 복음전파로 인해 겪는 환난을 말한다. 사도행전 14:22절과 20:23절에 보면 안디옥과 에베소에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 나와 있다. 이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외부의 압력을 뜻한다.
궁핍이란 말은 가난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은 많은데 하지 여러가지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역시 외부의 압력이다.
곤경이나 곤란이라고 표현된 말은 원어에서 좁은 곳이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라 오직 한곳만 열려있고 나머지는 다 막혀있는 상황을 말한다. 마치 몸 하나도 똑바로 빠져나가지 못할 좁은 곳에 갇혀있고 오직 앞으로 나갈 길만 겨우 열려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세가지 어려움은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고 다닐 때 겪었던 외적 환경들을 말한다. 이 세가지가 점층법이다. 첫번째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고난이고 두번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고난이고 세번째는 빠져나갈 길이 전혀 없는 막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4:8절에서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해석에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4:8절 앞부분을 보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라는 말이 있다. 빠져나가기 힘든 강도가 점점 세져서 마지막에 곤경이라는 말은 빠져나갈 수 없는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빠져나갈 길어 없는 듯한 환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어 그 길로 나가며 복음 전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