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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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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5:18-19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셨다

2026. 10. 28.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18-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화해하게 하시고 그 직분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는데 이는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이다.

이전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결과 하나님께서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셔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다는 내용이다.

18절에서 이 모든 것은 앞에서 말한 모든 새로운 피조물들이다. 모든 피조물들이란 우주 만물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질서이다. 이 모든 것은 우주 만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화해하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며 그리스도는 화해의 수단이고 하나님은 화해의 근원이자 시작점이다. 이러한 모든 새로운 피조물은 전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다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된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신 분이시고 또 완성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해를 이루는 하나님의 대리인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의 주요한 수혜자인 셈이다.

이렇게 화해하게 하신 후 우리에게 화해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다 했다. 여기서 직분이라는 말은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인 우리와 화해하게 하시고 그 것을 섬기도록 맡기셨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말은 넓게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이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뀐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바울은 먼저 자신과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우선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화해하게 하는 직분을 맡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화해라는 말은 원래 물물교환이나 환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사람을 하나님과 우호적 관계로 완전히 바꾸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는 친했던 관계로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원수된 상태와 우정의 관계를 서로 물물교환하듯 맞바꾸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하게 하시고 그 화해한 사람들에게 화해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화해의 사역은 그 직분을 맡은 새로운 피조물들의 섬김으로 확산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변화된 우리 자신을 보여주며 “나좀 봐! 이렇게 새것이 되었잖아!” 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화해해서 우리처럼 되는지 말해줘야 한다.

18절에서 바울이 말한 화해의 핵심을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화해의 주도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가 화해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셋째 인간이 화해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해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이 그 화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20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한 것으로 설명면서 화해의 직분이란 이러한 화해를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과 화해를 이루셨지만 그 화해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피해자가 다 용서하겠다고 하고 화해하자고 손을 내밀었어도 가해자가 그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러한 화해를 사람들에게 선포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하는 직분을 바울 일행은 맡았다는 것이다.

19절은 "즉 다시 말하면" 이라는 뜻의 말로 시작하며 앞에서 말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지는 19절 내용은 개역과 새번역이 완전히 다르게 번역이 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계시다” 라는 말을 꾸민다고 해석하면 NASB나 개역처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 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화해한다는 말을 꾸민다면 NIV나 새번역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 이라는 뜻이 된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화해한다를 꾸민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화해한다는 말을 수식한다고 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도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한다고 해석하는 쪽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의미로 보는 이들도 다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원어의 어순을 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가 맨 먼저 나온다. 그 다음에는 세상을 그 자신과 화해시키려고 라는 분사구문이 뒤 따른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표현은 바울만 사용한 표현이다. 모든 바울 서신을 다 찾아 보아도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은 동사나 분사나 부정사 바로 다음에 나온다.

물론 한가지 예외는 있다. 고린도후서 3:14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제가 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리스도 안에서가 없어진다는 말 앞에 두어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그리스도 안에서가 화해한다는 단어를 수식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보통 바울이 이런 경우에는 화해한다는 분사가 있었다는 주 동사 바로 다음에 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네 단어를 건너서 위치해 있다.

필자도 분명히 개역이나 NASB 처럼 번역해야 옳다고 본다. 원어의 어순으로 보나 문맥으로 보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가 옳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사용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일하셨다는 뜻이 문맥상 맞다. 또 19절은 이러한 화해의 사역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18절을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저없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고 담대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8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1:19절과 2:9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 안에 거하셨다고 했다. 예수님도 복음서의 여러곳에서 자신이 곳 하나님임을 말씀하셨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14:9절에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서를 통해서 비교해봐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능적으로 하나님 역할을 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기에 사람들의 죄를 따지지 않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겨주신 것이다. 특히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죄인 중의 괴수 같은 바울을 죄를 따지지 않고 맡겨 주신 것이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란 18절에서 화해의 직분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18절에서는 화해의 직분이고 19절에서는 화해의 말씀인 것이다. 즉 우리가 맡은 화해의 직분은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가 된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놀라운 직분을 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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