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말씀은 이제부터는 아무도 육신으로 알려고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역시 이제는 육신으로 알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 것은 이미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17절 맨 앞에도 그러므로 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14-16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 세상을 판단하는 관점이 바뀌므로 라는 뜻이다. 여기서 신자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육신의 관점에서 알지 않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결과가 바로 누구든지 새로운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원어에서는 이 부분에 "있으면"에 해당하는 동사가 생략되어있다. 신약성경의 그리스어에서 생략되는 경우는 아주 많다.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원어 순서대로 나열하면 "결과적으로 만약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이나 한글 번역들은 그리스도 안에 다음에 쉼표를 찍고 새로운 피조물 다음에 쉼표를 찍고 각각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동사를 하나씩 넣어서 번역한다. 그래서 "만약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가 되는 것이다.
라틴 벌게이트역을 보면 쉼표를 새로운 피조물 다음에만 찍었다. 그래서 "그결과 어떤 새로운 피조물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와 맞지 않는다. 옛 것과 새 것이 대조되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도 역시 그렇게 대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라는 말이 옛것과 짝을 이루고 새로운 피조물이 새 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17절 뒷부분을 앞부분에 나오는 새 창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7절 뒷부분은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영어 번역들은 17절 뒷부분을 세미콜론(;)으로 앞부분과 연결한느 것이다. 뒷부분이 옛 것과 새 것의 대조가 명확하기에 앞에 나오는 것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든지와 새로운 피조물과 대조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거기에서 새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바울서신에서 새 창조는 하나님의 통치권과 창조행위로서의 개인적인 거듭남으로 보면서 이러한 개인적인 새로워짐은 장차 이루어질 우주적 새창조의 예고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고 장차 온 우주 만물이 새롭게 될 때에 그 곳에 참여하게 된다는 확실한 약속을 받은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일차적으로는 바울 자신은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새롭게 변화된 자신을 보고 여러분들도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은 유대교에서는 이방인들이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유대교에 입교할 때 부르던 말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 취급을 했는데 드디어 이제 새로운 피조물 즉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끝부분에서 새로운 창조 행위 또는 우주적 갱신에 대한 믿음은 바울 시대의 유대교에서도 확인되지만 거듭남이나 새 창조 같은 비유가 개인들에게 적용될 때 그것이 종말론적인 사건을 현재에 미리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을 유대교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종말론적 새창조를 현재 이미 갖고 있고 그것은 종말에 분명히 완성되는 것이라 한 것은 바울이 받은 계시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육신의 잣대로 알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유대인들과는 그 뜻 자체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새로운 피조물은 유대인들의 기준처럼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기준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으면 이란 뜻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면 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다면 이제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이제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이다.
옛것은 지나갔다고 했다. 이는 과거에 한번 지나간 사건을 말한다. 옛것이 지나간그 순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순간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옛것은 지나갔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을 영접했다면 이미 우리의 옛것은 지나갔다. 이미 없다는 뜻이다.
보라! 라는 말은 신기한 구경거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야 저것 좀 봐!” 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이미 옛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기에 그 모습을 바라보라는것이다. 누구를 보라는 것일까요? 만약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아직도 새것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울과 그 일행을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좀 봐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자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새롭게 변화된 자신들을 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라는 것이다.
옛것은 지나갔다는 말은 단 한 순간의 사건이라면 새것이 되었다는 말은 과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계속 새것이라는 것이다. 한번 새것이 되면 계속 새것인 상태로 머물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전히 변화될 우주적 갱신은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