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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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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아 끌고 간다

2026. 10. 24.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아 끌고간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제부터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우리가 만약 미쳤다면 하나님을 위해 미친 것이고 온전하다 하면 여러분을 위해 온전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는데 한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죽으신 것인데 이제 자신들을 살리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14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렇게 때로는 미친사람 소리도 들었다가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 소리도 들었다가 해야하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다. 개역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했는데 새번역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여잡는다고 했다. 휘여잡는다고 번역한 말이 원어에 담긴 의미를 그림처럼 보여준다.

이 말은 원래 여럿이 둘러싸서 함께 이끌고 간다는 뜻이다. 마치 흉악범을 호송하기 위해 경찰관 둘이 죄수의 양쪽 팔을 각각 하나씩 휘여잡고 걸어가고 앞뒤로 무장한 경찰관이 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바울 일행을 둘러싸서 휘여잡고 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 일행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사로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강권한다 또는 휘여잡는다는 말은 강물과 강뚝에 비유할 수 있다. 강뚝이 강물의 양쪽에 높이 싸여 있기에 강물이 그 강뚝 안에서 강뚝이 가는데로 따라가는 것이다. 바울 일행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뚝이 된 것이다.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둘러싸여 있다. 열린 곳은 오직 한 곳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강뚝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강물도 강똑에 의해 사로잡혀 흐르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도하는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복음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 자기 중십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살아가도록 몰아붙이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뜻한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할 때 대부분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쓰였다. 따라서 바울의 사역은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생각과 경험을 따라 살아가서는 안된다. 사람들의 평판에 따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움직여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그 사랑이 이끄시는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우리가 판단해본 결과라는 이란 뜻이다. 왜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 확신하게 된 것은 이어 나오는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니 모든 사람이 다 죽은 셈이라는 것이다.

한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은 오직 믿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모든 인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14-15절에 세번 나오는 모든 이라는 말은 인류 전체를 가리키지만 그러나 15절의 살아있는 자들은 신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은지는 로마서 5:19절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말은 로마서 5:15-19에서 한 말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로마서 5:19절은 “한사람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은 것이다.

로마서에서 한사람의 불순종은 아담의 불순종을 가리킨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Augustine은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했다. Pelagius는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를 모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중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도 거룩한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로마서 전체를 읽어보면 한사람도 예외없이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것이다.

한사람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될 길이 열린 것이다. 만약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면 예수를 믿고 의인이 될 수 있는 길도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특정한 믿는 사람만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뜻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길 바라심으로 모든 이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그 사랑이 바로 바울 일행을 사로잡아 감싸서 강제로 끌고 가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15절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이유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자기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 분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영적으로 살아난 신자로 보지 않고 아직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보기도 한다. 살아있는 자들이 신자이라고만 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살아가면서 아직도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살아있는 자들로 본 것이다.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된 존재이다. 늘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빚진 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감싸는 강둑이 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랑의 강둑 안에 머물면서 그 사랑이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미친사람처럼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다. 죄인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분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이 강둑이 되어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흘러가도록 인도하시는 분 때문이다. 바울도 그 사랑에 압도되어 그 사랑에 이끌려 평생을 살았다. 우리도 역시 그 사랑에 압도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둑 안에 머물면서 흘러가면 저절로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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