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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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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3-4

죽지 않고 영원한 몸 그대로 입기를 간절히 원한다

2026. 10. 17.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3-4 우리가 입는다면 벌거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죽기 않고 영원한 몸을 그대로 입기를 바란다. 그 결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완전히 삼켜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갖게 될 영원한 집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장막 집에서 영원한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탄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벗을지라도 벌거벗은 채로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장막집을 벗어버리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덧입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3절은 새번역과 개역이 완전히 다르게 번역이 되어있다. 새번역은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라고 번역했고 개역은 "이렇게 입음은" 이라고 번역했다. 이는 사본상의 차이 때문이다. 6세기 Codex Claromontanus는 벗는다고 기록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은 압도적으로 입는다로 기록했다. 그런데 UBS 원어 성경 위원회는 벗는다가 원문이라고 결정했다. 영어 번역들도 ESV, KJV, NASB, NIV, RSV는 입는다고 번역했고 NAB, NJB, NRSV는 벗는다고 번역했다. 사본의 증거는 6세기 대문자 사본 하나를 빼놓고 압도적으로 입는다로 기록했는데 어째서 벗는다가 원문이라고 결정했을까?

이는 원어에서 3절 첫 두 단어가 "만약 참으로" 라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본을 따라 "만약 참으로 입는다면 벌거벗은 몸으로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 된다. 만약 6세기 Codex Claromontanus를 따라 "만약 참으로 벗는다해도 벌거벗은 몸으로 발견되지 않을것이다" 라는 느낌이 된다. 후자는 역설적인 표현이고 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기에 어려운 것이 원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대 사본 필사자들이 어려운 것을 쉽게 고치는 경우는 있어도 쉬운 것을 어려운 내용으로 고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참으로 라는 표현은 불확실한 조건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을 조건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만약 참으로" 라는 표현은 바울의 편지들에서 네 번이 더 나오는데 모두 다 "만약 참으로 너희가… 했다면" 이라고 말하는데 모두 다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가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에베소서 3:2절과 4:21절은 만약 너희가 복음을 들었다면 이라는 표현이고 골로새서 1:23절은 만약 믿음 안에 거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만약 참으로" 라는 표현은 신구약 전체에서 바울만이 사용한 표현인데 모두다 확실히 그렇다는 내용을 확실한 조건을 의미하는 말로 썼다. 따라서 "만약 참으로 우리가 입는다면" 이라는 표현은 입을지 안입을지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분명히 입는다는 확실한 조건이다. 그러면 벌거벗은 채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이 두려워 한 것은 그 중간 상태이다. 육신의 몸과 영원한 몸의 중간에 존재하는 것은 벌거벗은 몸이다. 우리의 영혼이 텐트와 같은 현재의 몸을 입고 있는 채로 영원한 몸을 입기 전에 죽으면 우리는 벌거벗은 채 발견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지만 우리의 영혼의 껍데기가 없기에 벗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몸을 우리 영혼의 집이라 바울은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두가 새로운 몸을 입고 변화되기까지는 벗은 채로 영혼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 그냥 살아있는 채로 주님 다시 오셔서 영원한 몸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무 몸도 입지 않은 중간상태는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4절은 "왜냐하면 또한" 이라는 말로 3절과 연결이 된다. 왜냐하면 또한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거운 짐이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삶의 고통이나 육신의 질병을 가리킬 것이다. 육신의 고통을 짊어지고 신음하며 내는 소리는 “빨리 아프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영원한 몸을 입혀주세요” 라는 것이다. 육신의 고통 때문에 끙끙거리고 신음하면서 빨리 새로운 몸으로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벗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몸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새로운 몸을 덧입기를 원하는 것이다. 바울은 육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싶어 갈망하며 탄식하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벗기를 원하지 않고 덧입혀지기를 원한다 그 결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벗기를 원하지 않고 덧입혀지기를 원한다는 말은 죽음을 거치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영원한 몸을 입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뜻이다. 삼켜진다는 말은 물 같은 것을 완전히 마셔버린다는 뜻이다. 새로운 몸이 내려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사망을 완전히 마셔버리고 우리는 새로운 몸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죽을 몸이 생명의 몸 안에 통째로 삼켜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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