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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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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5:1-2

영원한 몸을 입기를 갈망하며 탄식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10. 16.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1-2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갖게 될 영원한 집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장막 집에서 영원한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탄식하고 있다.

이전 말씀은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것은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고 현재의 가벼운 고난은 무거운 영광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잠깐인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현재의 몸을 장막집에 비유하며 영원한 집을 입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이다.

1절은 왜냐하면 우리는 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라는 말은 4:18절에 네 번이나 나오는 보이는 것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눈에 보이는 천으로 된 집을 뜻한다. 그리고 그 단어에 부정어를 붙여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의 건물을 뜻한다. 보이는 이 땅의 천으로 된 집은 잠깐 일시적인 것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건물은 영원하다는 것이 4:18절의 내용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떠돌던 때에 사용하던 천막으로 된 집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 영원히 집짓고 사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는 안다는 말은 왜 천으로 된 집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건물은 영원한지를 우리는 안다는 것이다.

물론 4:18절의 일시적인 장막집은 우리 몸을 비유한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건물은 부활의 몸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이는 4:14절의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를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 주신다고 한 것을 안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잠시 장막집을 입고 계셨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을 입게 하셨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성도들 역시 예수님과 같은 영원한 집을 입게 된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이라고 그 아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진다는 말은 육신의 죽음을 뜻한다. 이는 바울이 막연히 모든 인간이 죽기에 만약 죽는다면 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앞에서 이미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다고 했기에 실제적으로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만약 죽는다면 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몸을 무너질 장막집에 비유했다면 이와 짝을 이루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물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말도 역시 영원한 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물이라는 말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해석하기도 하고 하늘 성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물을 영원한 몸으로 해석한다.

문맥상 다른 해석은 말이 안된다. 이 땅의 장막집과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물이 대조되고 있기에 둘 다 같은 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물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썩지 않는 영원한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차 부활하여 예수님께서 이미 입으신 영원한 몸을 우리도 입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그러한 집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다고 한 것에 있다. 그 부활체를 우리는 이미 현재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래의 확실한 소유를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죽음과 부활체 사이에 노숙자 상태의 집 없는 기간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보면 주님 재림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했기에 이러한 주장은 말이 안된다.

실제 부활의 몸을 받는 것은 재림 때이지만 그 소유권은 죽는 순간 확정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믿지 않는 사람도 죽을 때까지는 그 소유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분명히 믿고 있기에 그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영원한 집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가 끝난 상태이지만 실제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 재림 때인 것이다.

2절은 왜냐하면 이것 안에서 우리는 탄식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다수는 이 탄식이 고통 때문이 아니라 부활의 몸을 열망하기 때문에 탄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부활의 몸을 간절히 사모하는 희망의 한숨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 두 요소가 함께 있다며 고통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신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원어의 문장 구조를 보면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사모하면서 또는 갈망하면서 라는 뜻의 분사가 탄식한다를 수식하는 구조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은 부활의 몸이다. 따라서 부활의 몸을 입기를 갈망하면서 현재 고통 때문에 탄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탄식을 부활의 몸을 열망하는 것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문장 구조상 옳지 않다. 더구나 4절에서도 2절과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데 무거운 짐에 짓눌려서 탄식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탄식의 중심은 현재의 고통이다. 영광의 몸을 입기를 간절히 바라는 탄식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문법적 구조나 문맥보다는 바울이 말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라 해석한 것이다.

덧입는다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원어의 의미는 현재 입고 있는 장막집 위에 하늘로부터 오는 집이 그대로 덧입혀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입는다는 단어의 강조형일 뿐이고 입는다와 덧입다는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들은 입다는 말 앞에 붙여진 전치사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림 때까지 살아남아있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바울이 구태에 이미 입은 옷를 벗지 않고 그 위에 그대로 새옷을 덧입기를 갈망한다고 한 것은 분명히 고통 속에서 사역하면서 죽기 전에 영원한 몸을 그대로 입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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