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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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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4:9-11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10. 12.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4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4:9-11 우리는 추격을 당해도 버려지지 않고 잡혀서 땅에 던져져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우리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 우리 살아있는 자들이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지고 그 결과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는데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 것이 아니며 우리는 이 능력으로 우겨쌈을 당하거나 낙심할 일을 당해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추격을 당해도 버려지지 않고 잡혀서 땅에 던져져도 죽지 않고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우리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며 우리 살아있는 자들이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지고 그 결과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9절은 그러나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한다. 박해 또는 핍박을 받는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쫓긴다는 말이다. 마치 수사관이 탈주범을 쫓는 것과도 같은 것이고 추노라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도망친 노비가 추노꾼에게 쫓기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은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추노꾼에게 쫓기는데 아무도 도와주거나 구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 한 예가 사도행전 16:16-40에 나온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감옥문을 열어주시고 구해주셨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다는 말의 뜻이다.

9절 뒷부분에 나온 말은 레슬링이나 권투에서 상대를 바닥에 쓰러지게 하는 전문 용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나 경기장 안에서 결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말은 아래로 던져졌다는 뜻이다. 레슬링을 하다가 상대가 번쩍 들어 땅바닥에 메어 쳐서 개구리 뻗듯 완전히 뻗은 모습일 수도 있고 또 권투 선수가 상대를 쳐서 바닥에 쓰러지도록 하는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투 상황에서 상대의 칼에 맞아 땅바닥에 쓰러진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앞에서 사방에서 포위를 당하고 쫓기는 장면과 연결한다면 적에게 추격을 당하다가 잡혀서 적의 칼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자연스럽다.

그 뒤에 나오는 망한다는 말은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으로 본다면 레슬링이나 복싱의 장면이 아니라 추격해온 적의 칼에 맞아 쓰러진 장면이다. 단어를 사전적 정의로만 해석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어 자체는 정확한 의미가 없고 항상 문맥을 통해서 정확한 의미가 드러난다. 이것은 분명히 사도행전 14:19-20에 나오는 경험을 두고 한 말이다. 바울은 돌에 맞은 뒤 성 밖에 버려졌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8-9절에 나온 네 쌍의 비교되는 말들은 앞의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뒤의 말들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자신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고 대적들의 공격에 죽을 위기에 있었지만 그 안에 보물을 담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구해주셨다는 것이다. 금방 깨질 것 같은 위기에서도 깨지지 않은 것은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 뿐이라는 것이다.

10절은 8-9절에 딸려 있는 말이다. 예수의 죽 당하심을 항상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 했다. 죽임당하심이란 말은 죽은 결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의 과정을 뜻하는 말이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끈 모든 과정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죽임당하심을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을 바울의 삶 전체가 지속적 순교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은 선교여행을 뜻하는 말이다. 몸 안에 담긴 보물을 담아가지고 당시의 모든 세계를 두루 다녔다. 그 선교여행은 마치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과정과도 같이 혹독한 것이었다. 그런 고난을 달게 받으며 다녀도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구해주셨기에 질그릇 같은 바울의 안에 담긴 보물을 나타낼 수 있었다. 10절에서는 그 보물을 예수의 생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나타낸다는 말은 마치 금은보화가 담긴 그릇의 뚜껑을 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햇빛을 받은 보물이 찬란히 빛나듯 예수의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 찬란히 빛나게 되는 것이다.

11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10절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의 죽음의 과정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예수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인가 하면 이란 말이다. 왜 그런가 하면 살아있는 바울 일행은 계속 죽음에 넘겨진다는 것이다. 새번역안 맡긴다고 번역했지만 이는 사형에 처하도록 넘겨진다는 뜻이다. 넘겨진다는 말은 마가복음 9:31절과 10:33절에서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로마 통치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장면에서 나왔던 말이다.

“늘” 이나 “항상” 으로 번역된 말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이라는 뜻이다. 죽음에 넘겨진다는 말은 10절에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의 과정과 똑 같은 것을 말한다. 복음을 전하러 다닐 때마다 항상 그렇게 십자가의 고난과 같은 고난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질그릇 안에 담겨있는 예수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말은 10절 끝부분과 똑같다.하지만 10절 끝부분에서는 우리 몸 안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11절은 죽을 육체 안에서 나타난다고 말을 바꾸었다. 몸이란 사람이나 동물의 살아있는 몸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육체라는 말은 살과 피라고 말할 때 살에 해당하는 말이다. 거기에다가 죽음에 속한 이라는 말을 덧붙였기에 죽을 고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몸 대신 살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일시적이고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의 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안에 나타난다는 말은 바울 일행 안에 있는 보물들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바울 일행에게는 그들이 복음 전하기 위해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것 조차도 보물이고 자랑거리이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보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한다. 혼자 간직하고 있으면 안된다. 뚜껑을 열어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교회에 쓴 편지를 우리가 성경으로 받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 그 말씀들을 넣어 주셨는데 그것을 말로 전파하고 또 글로 써서 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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