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고 몰래 숨겨서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비열한 방식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써서 전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밝히 드러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종류의 인간 양심 앞에 우리 스스로를 추천한다.
이전 말씀은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께로 돌아서면 너울이 벗겨지고 주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우리 모두는 너울이 벗겨진 채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그 영광에서 시작하여 그 영광에 도착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주의 영으로부터 온 것이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를 힘없이 이 일을 하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는다며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 자신들을 떳떳하게 세운다는 내용이다.
앞부분에서 바울 일행은 향 뿌리는 사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로 변신을 했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일을 맡겨 주셨기에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드러내며 증거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모두에게 빛을 비추고 있지만 그 중 일부가 그 빛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너울이 씌워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탄이 너울로 그들의 마음을 가렸기 때문이다.
4:1절의 이것 때문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일 때문에 이 직분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얻었다는 것이다.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직분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 일행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닮았기에 그 직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격이 없고 그 영광에 이르려면 평생 따라가도 그리스도를 모두 닮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 직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낙심하다 라는 말은 나쁘게 행한다는 뜻이다. 그런 직분을 받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비난하고 조롱하기 때문에 낙심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아무리 대적들이 비난하고 조롱한다 해도 전혀 실망하지 않고 자포자기하여 멋대로 행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계속 욕만 먹으면서도 너울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당당히 드러낸다는 말이다.
낙심하지 않게 된 때는 3:9절에 나온 무죄를 선고하는 직분을 맡은 때부터이다. 이 직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바울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된 것이다.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같은 직분을 받았으므로 실망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고 무죄를 선고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낙심하거나 실망하고 그리스도의 빛을 감추어서는 안된다.
2절에는 낙심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하고 있다. 원어에서 2절 첫 부분은 개역처럼 숨은 부끄러움을 버렸다는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핵심단어는 버렸다 또는 배격하였다는 말이다. 이 말은 시장에서 연설한다는 말 앞에 멀리 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고 재판을 하고 공적인 회의를 하고 중요한 국가 정책을 공표하는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이런 것들을 다 멀리하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에 버렸다 또는 배격하였다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렇게 버리거나 배격한 내용은 숨겨진 부끄러움이다. 숨겨진 부끄러움이라는 말을 비열하고 은밀한 방식이라는 뜻이다. 이는 거짓 교사들의 비열하고 은밀한 사역 방식을 말한다. 이는 복음을 전할 때 동반될 수 있는 부정한 형태의 행위들이다.
따라서 숨겨진 부끄러움을 배격한다는 말은 개인적인 수치스러운 행위를 안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까 염려하고 몰래 숨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버렸다는 뜻이다. 이는 3:18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거울로 비추는 역할을 맡은 것과는 정 반대가 되는 행동이다. 반대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몰래 숨어서 복음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예로 든 것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개역의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고 새번역은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라고 번역한 말이다.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걸어다닌다는 뜻인데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궤휼 또는 간교로 번역한 말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간교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앞에서 말한 은밀하게 숨어서 복음 전하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비열한 방식으로 복음 전해서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행하며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간교함과 짝을 이루는 말은 왜곡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왜곡이라는 말은 본래 미끼를 놓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속여서 함정에 빠뜨리거나 향이나 포도주나 귀금속에 다른 물질을 섞어 파는 것에도 이 말을 쓴다. 하나님 말씀을 왜곡한다는 말은 2:17절에서 하나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니라는 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전하고 그것을 미끼로 삼아 돈을 받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바울의 대적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미끼로 쓴 것이 무엇을 뜻할까? 대적자들은 많은 유대인들의 인기를 얻기위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는 유대인은 이방인보다 낫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방인들은 믿음을 갖는다 해도 율법이 없기에 유대인만 못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들에게 옳다고 박수를 치며 열광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한 미끼라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한다면 이와 같은 것이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산다고 전해서 그것을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면 정확히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는 것이고 믿으면 똑같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동료 유대인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사람들까지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위협해도 바울은 인기를 얻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미끼로 쓰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그대신 바울 일행은 진리를 환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숨겨진 부끄러움과 교활함과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여 미끼로 삼는 것의 반대이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말씀을 교묘하게 조작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진리를 있는 그대로 환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진리를 환히 드러냈다는 것은 투명하고 정직하게 진리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 있어 욕을 먹고 돌을 맞을 수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싫어할까봐 빼지 않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진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뜻이다.
이어서 모든 종류의 인간 양심 앞에서 우리 자신을 추천한다고 했다. 추천은 본래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인데 바울은 자신들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것을 근거로 자신들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인간 양심이라는 말은 기독교인이나 비 기독교인이나 고린도 사람이나 그 밖의 사람이나 모든 종류의 사람의 양심 앞에서 라는 뜻이다. 이는 모든 형태의 인간 양심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울은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겨냥해서 그들이 좋아하도록 전략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양심 앞에서 정직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탄에게 마음이 가려지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들의 양심으로 판단해서 복음의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추천했지만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고 한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양심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완전하며 최종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사람들의 판단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준으로 삼아 사역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