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3-4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면 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멸망하는 자들의 경우에만 가려진 것이고 지금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가려서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고 몰래 숨겨서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비열한 방식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써서 전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밝히 드러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종류의 인간 양심 앞에 우리 스스로를 추천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복음이 가려있다면 멸망할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며 이는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려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3절은 "그러나 만약 그것이 가려져있다면" 이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바울 일행이 자신들의 안에 비추어진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이처럼 자랑하고 있는데도 그러나 만약 그 빛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라는 뜻이다. 가려져있다는 말은 완전히 다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가려져 있는 것은 우리의 복음이다. 바울일행이 복음을 똑같이 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듣고 그 빛 앞에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거부하고 바울 일행을 대적했던 것이다.
Thrall은 많은 사람들에게 바울의 메시지가 불분명하게 느껴진 증거는 그의 복음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자주 효과를 내지 못했고 특별히 유대인들의 경우에 그러했으며 게다가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부활하여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하지 않았기에 그의 복음이 참된 영광을 가려버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으로 말한다(Thrall, ICC, 304). 바울은 자신이 참된 복음을 전하지만 거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특별히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거부한 경우를 보았던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반대를 직면할 때마다 자신이 선포한 진리를 모든 인간의 양심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멸망하는 자들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 거부되는 것은 복음의 잘못도 설교자의 잘못도 아니고 그것은 듣는 자들의 잘못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태도로 듣기 때문이고 그들은 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확인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참 빛을 거부하는 것이 복음이나 그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전달방식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여전히 완전히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고 깨달은 것은 바로 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그들은 진리를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고 자신들이 맞다고 확인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인정해주면 훌륭한 설교라며 그런 교회로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것이다. 오늘날도 각각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믿는 것도 역시 마음이 완전히 가려졌다는 증거이다. 만약 그 가림막이 사라졌다면 말씀을 듣고 불편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말씀을 따라가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 안에서 가려져 있다고 한 것이다. 원어에서 안에서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은 영어에서나 한국어에서 쓸데없는 말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이나 한글 번역에서도 안에서 라는 말은 생략한 채 번역했다. 하지만 여기서 안에서 라는 말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아직 그들의 마음 속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속에 라는 뜻도 아니다. 또한 이는 사실이고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판단 속에서 라는 뜻도 아니다. 그들 안에서 라는 의미는 "그들의 경우에"라는 뜻이다. 이는 복음이 가려져있거나 바울이 알 수 없는 말로 전했기 때문에 가려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경우에만 가려져 있는 것이다. 자기들 스스로 가림막을 설치하고 그 가림막 안에 머물고 있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가려져 있다는 말도 역시 완전히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기에 저들의 양심에 아직도 너울이 씌워져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완전히 다 가릴 수 있는 가림막을 설치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포되는 복음을 수십년간 듣고 스스로 성경을 읽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 일행은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동일하게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빛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양심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지 바울 일행이 전하는 복음이 참 빛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4절에서도 역시 안에서 라는 말이 나온다. 그들 안에서 라는 말은 새번역처럼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고 했다. 이 세상의 신이란 원어에서는 이 시대의 신이라는 뜻이다. 신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하나님과 동일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 시대의 신이다. 바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숭배하던 바로 그 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을 가리킨다. 계시록 1:8에서 하나님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도 계셨고 창세 이후 지금까지의 시대에도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도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 사탄은 지금 이 시대의 신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란 예수님 재림 전까지 시대를 말한다.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대에는 사탄은 존재하지 않는 뜻이다.
어둡게 하여서 라는 말의 원어의 뜻의 눈을 멀게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눈을 멀게했다고 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원어를 직역한 반면에 개역은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라고 의역을 했다. 이는 불신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다 가려서 마음이 봉사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인 복음의 빛이 비춰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라는 말에서 “보지 못하게” 란 말은 의역한 것이고 이는 “비추지 못하게” 란 뜻이다. 비추다는 말의 어원은 동틀무렵을 가리키는 말에서 왔다. 이는 빛이 비취기 시작하는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뜨는 해를 가릴 수 없다. 그런 때 쉬운 방법은 방의 모든 창문을 막으면 된다. 이 시대만의 신이고 다음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을 신인 사탄은 이처럼 떠오르는 빛과도 같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불신자들이 보지 못하도록 모든 창문에 가림막을 설치한 것이다.
복음의 빛이란 말에서 빛은 원래 달과같이 빛을 반사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바울과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을 못하게 막는 것을 말한다. 달은 햇빛을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아주 약하게 비춘다. 그러나 성도들의 마음 속에 비추어진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난 분이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똑같은 것이다. 사탄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나타난 영광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