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14-15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진 이유는 오늘날 옛 언약을 읽는 자에게도 그 너울이 남아있는데 그 너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사라지는 것이기에 모세의 글이 청중들에게 읽혀질 때 청중들에게도 덮여 있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는 영원한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는 아주 담대하게 행동하는데 모세처럼 얼굴을 가리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담대히 드러내며 행동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들의 마음이 딱딱해져서 오늘날까지 옛 언약을 읽을 때 그 너울이 덮여 있는데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된다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14절은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졌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라는 말은 우리는 모세처럼 하지 않으나 라는 뜻이다. 바울 일행은 모세처럼 너울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으나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바울 일행에게 있지 않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에 있다. 개역이나 새번역에서 완고하다고 번역한 말은 본래 건물을 짓는 대리석에서 온 말이다. 그들의 마음이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말은 생각과 이해를 하는 기관인데 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 기관이 대리석처럼 굳어졌다고 한 것은 생각과 이해가 굳어져서 바울 일행이 드러내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늘 가면을 쓰고 거짓된 거룩으로 위선적인 삶을 살다 보니 그들의 생각이 대리석처럼 딱딱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정죄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어서 바울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오늘날까지 그들이 옛 언약을 읽을 때 똑 같은 너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똑 같은 너울이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던 그 너울이다. 그 너울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즉 바울의 시대까지 그 너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 일행과 함께 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훨씬 더 밝은 빛이고 영원히 남을 빛이다. 그 영원한 영광이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계속 같은 너울로 그 영원한 영광 조차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던 바로 그 너울이 바울의 때까지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절의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읽는 장소 위에서 라는 뜻이다. 따라서 언약의 책을 읽을 때가 아니라 그 읽는 장소 위에서 라는 뜻이다. 여기서 바울 시대에 읽는 장소란 옛 언약을 회당에서 큰소리로 읽어주는 그 장소 즉 그 읽는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로 말하면 말씀을 전하는 강단 위에 너울이 덮여져 있었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왜 모세의 때부터 바울의 때까지 덮여있었는가 하면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너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벗겨진다는 것에 대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만 그 너울이 벗겨진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든지 주께 돌아서면 그 너울이 벗겨진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직 믿는 크리스천들에게만 드러난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만 그 너울은 벗겨지고 그런 사람들만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인들에게는 아직도 그 너울이 덮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에 그 너울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도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사람들은 너울로 가리고 그 영광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위로를 주고 받을 축복만 전하는 거짓된 말씀만 들으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설교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오늘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그대로 전하는 것이지 설교자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만들어내는 말이 아니다. 설교란 성경이 오늘날 성도들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위로와 놀라운 축복이 있다고 전하는 말만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한다면 시내산에서 있던 그 너울이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15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너울이 벗겨지는데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 그 너울이 그 마음을 덮었다고 말한다. 14절에서 “옛 언약을 읽을 때” 라는 말은 읽어주던 그 장소를 말한 것이지만 이번에 모세의 글을 읽을 때 라는 말은 읽어주던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14절에서는 강단에서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 덮여있었다고 한 것이라면 15절에서는 모세의 글이 읽혀질 때 청중들의 마음이 덮여있었다는 뜻이다.
강단에서 옛 언약을 읽어주는 사람에게만 너울이 씌워져 있는 것이 이제는 회중석에 앉아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 위에 씌워져 있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머물지 않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들어도 소용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전하는 자들이나 듣는 자들이나 다 너울로 덮여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 영광의 빛을 담대히 드러내지 않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을 그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들은 담대히 그 영광을 드러내고 감추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