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12-13 우리는 영원한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으므로 우리는 아주 담대하게 행동하는데 모세처럼 얼굴을 가리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담대히 드러내며 행동한다.
이전 말씀에서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직분에는 더 큰 영광이 넘칠 것이고 전에는 영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훨씬 더 큰 영광이 나타나서 존재감을 잃게 되었다. 폐지되도록 정해진 옛 언약의 영광과는 달리 새 언약의 영광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이 같은 소망 있으므로 많은 담대함을 사용한다며 우리는 모세처럼 너울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12절 맨 앞에는 그러므로라는 말이 있다. 이는 훨씬 더 밝고 훨씬 더 많고 영원이 남을 영광이 있기 때문이란 뜻이다. 그래서 이러한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라는 뜻이다. 특별히 소망이란 11절에 나오는 영원히 남을 영광 안에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다. 개역은 담대히 말한다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는데 원어는 많은 담대함 안에서 사용한다는 뜻이다. 사용한다는 말은 고린도전서에서 네 번 나오는데 주로 행동으로 그 권리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고린도후서에서 세 번 나오는데 행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 말은 개역처럼 말을 담대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행동을 담대하게 한다는 뜻이다. 새번역처럼 대담하게 처신한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많은 담대함 안에서 라는 말에서 담대함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이라는 말과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담대함이라는 말은 마음에 있는 모든 말을 다 하는 자유를 가리키는 생동감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많은 담대함 안에서 행동한다는 말은 자신들의 안에 있는 모든 말들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하면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신들 안에 있는 모든 말은 무엇일까? 이는 3:6-11절에서 모세의 직분과 의를 베푸는 직분을 대조한 것에 나와있다. 특별히 3:6절에서 새언약은 문자가 아니라 영으로 된 것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이 많은 담대함으로 말하면서 행동한다는 말은 구약의 율법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안에 있는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다 숨김없이 말하면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행동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13절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13절은 원어에서 우리는 모세처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한다. 13절 첫 부분에는 행동한다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12절 끝에 나오는 우리는 처신한다 또는 행동한다고 했기에 13절 첫 부분에서는 행동한다는 말은 빼고 우리는 모세처럼 하지 않는다는 말만 한 것이다. 모세가 어떻게 처신했는가? 원어를 보면 바로 이어서 얼굴에 너울을 두어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결국 사라져가는 그 마지막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울 일행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안한다는 것이다. 일행은 자신들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을 가리지 않고 자신있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13절은 12절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 사라져가는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을 가렸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세가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는 말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한 행동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벗고 백성들 앞에서는 너울로 가리는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모세의 얼굴에서 사라져가는 영광의 빛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대부분 출애굽기 34:35절을 근거로 모세가 얼굴을 가린 이유가 백성이 영광의 빛에만 몰두하여 그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얼굴을 가렸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3:13절 끝부분에서 바울은 그 목적은 사라져가는 그 결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라고 분명히 설명했다. 모세가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중에 그 얼굴에서 그 영광의 광채가 점점 약해져가고 결국 사라져가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의 임재가 모세에게서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렸다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34:33-34에 보면 모세는 백성들 가운데 있을 때는 너울을 써서 사라질 영광을 가렸지만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갔다. 하지만 바울의 대적자들은 항상 너울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저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고 오직 사람들 앞에서만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 일행은 너울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자신들 안에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있기에 항상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울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감추는 자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담대히 드러내는 자신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신자들도 자세히 보면 이와 같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감추지를 않는다. 항상 하나님과 함께 있기에 항상 그 영광을 드러내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지를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만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만 숨기면 되기에 항상 속 마음을 숨기고 사람들 보는 곳에서만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